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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세에 ‘에이지 슈트’ 400회 이상…야구도, 골프도, 인생도 유백만처럼 [이헌재의 인생홈런]

입력 | 2024-12-23 12:00:00


골프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유백만 전 프로야구 MBC 감독이 제주 스카이힐CC 연습장에서 어드레스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헌재 기자


골프를 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꿈은 ‘에이지 슈트(Age Shoot)’다. 자신의 나이보다 적거나 같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것을 의미하는 에이지 슈트를 하기 위해서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도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수준급 골프 실력은 꾸준히 갖춰야 한다. 80대 나이에 싱글을 쳐야 겨우 할 수 있는 게 에이지 슈트다. 에이지 슈트를 할 수 있다는 것, 해본 적 있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행운이자 축복이다.

‘시니어 골프의 제왕’ 베른하르트 랑거(67)가 존경받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랑거는 올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챔피언스 최종전 찰스 슈와브컵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는데 대회 4라운드 중 세 라운드에서 에이지 슈트를 기록했다. 개인 통산 21, 22, 23번째 에이지 슈트였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변치 않는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골프인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유백만 전 프로야구 MBC 감독이 제주 이승악 오름 삼나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유백만 감독 제공


유백만 감독과 아내 이정자 씨자 제주 유채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유백만 감독 제공


그런데 한국에는 랑거도 한 수 접고 들어갈 만한 특별한 골퍼가 있다. 실업야구 상업은행과 한국화장품, 프로야구 MBC 청룡의 사령탑 등을 맡았던 유백만 전 감독이 주인공이다.

올해 84세인 유 감독은 에이지 슈트의 달인이다. 필드에 나갔다 하면 거의 대부분 에이지 슈트를 한다.

유 감독이 처음 에이지 슈트를 기록한 것은 66세이던 2007년이다. 호주에서 야구 후배인 김재박 전 LG 감독 등과 동반 라운드를 하면서 6언더파 66타를 친 게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생애 100호 에이지 슈트까지 정확히 10년이 걸렸다. 그런데 70대에 접어들어 나이가 많아질수록 에이지 슈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2017년 제100호 에이지 슈트를 한 뒤 200호 에이지 슈트는 불과 2년도 채 걸리지 않은 2019년에 달성했다. 그리고 1년 후인 2020년에는 제 300호 에이지 슈트 기록을 세웠다. 유 감독은 “2022년 8월 27일에 75타를 쳐 373번째 에이지 슈트를 했다. 그걸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에이지 슈트 횟수를 세지 않고 있다. 지금쯤은 400회는 훨씬 넘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몇 해 전 제주에서 열린 롯데렌터파 여자오픈 프로암에서 메달리스트를 차지한 유백만 감독의 모습. 유백만 감독 제공


유 감독은 인생의 전반기는 야구인, 후반기는 골프인으로 살고 있다. 야구 선수 시절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투수였다. 부산상고 시절 내야수였던 그는 실업팀에 입단한 후 투수로 전향했는데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실업 무대를 평정했다. 상업은행 시절이던 1963년 처음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고, 이후에도 세 차례(1969년, 1970년, 1971년)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한창 야구 선수로 활동하던 젊은 시절부터 그는 골프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은행 일을 계속 하려면 골프를 배워두는 게 좋겠다”는 박현식 당시 제일은행 감독의 권유가 계기였다.

그가 처음 골프를 시작한 1960~1970년대만 해도 한국에는 골프장이 몇 개 없을 때다. 골프를 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연덕춘, 박명출 등 추후 한국프로골프(KPGA) 창립을 이끈 쟁쟁한 프로들과 함께 라운드를 할 기회를 종종 얻곤 했다.

삼성 코치 시절의 유백만 감독. 동아일보 DB


온화하지만 강직한 성품의 그는 야구 지도자로서도 오래 활동했다. 20대 중반에 선수에서 은퇴한 후 실업팀인 상업은행과 한국화장품 감독을 역임했고,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후에는 MBC 청룡에서 수석코치와 투수 코치 등을 맡았다. 1988년에는 MBC 감독으로 한 시즌 팀을 지휘했다. 이후 1994년까지 삼성에서 투수 코치와 투수 인스트럭터 등으로 활동했다.

그 와중에도 골프와의 끈은 꾸준히 이어갔다. 한국프로야구는 매 시즌이 끝나면 야구인 골프대회를 여는데 1990년에 KPGA 티칭 프로에 합격한 그는 나갔다 하면 메달리스트(최고 스코어에게 주는 상)를 수상하곤 했다.

자연스럽게 인생 후반전은 골프가 주 무대가 됐다. 대구에서 머물던 시절 그는 알음알음 찾아온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여자 국가대표 배구 선수 출신 조혜정의 딸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활약했던 조윤희와 조윤지 자매도 있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뛰었던 배상문도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프로 골퍼로서도 많은 걸 이뤘다. KPGA 시니어 투어 대회에서 두 번 우승했고, KPGA 그랜드 시니어 부문에서는 7번 우승했다. 2007년에는 프로 테스트를 거쳐 호주 시니어 프로골프 투어 정회원이 됐다.

유백만 감독의 프로 스윙. 유백만 감독 제공

유백만 감독이 레슨을 하고 있다. 유백만 감독 제공


유 감독은 2011년 산 좋고, 바다 있고, 골프장도 많은 제주도로 이사를 왔다. 예전 야구인 시절 모은 돈으로 사놓은 제주 서귀포 돈내코에 집을 지었다. 제주에 와서도 그는 여전히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골프 레슨을 하고 있다. 예전처럼 전문 선수가 아니라 골프를 잘 치고 싶어하는 일반인 제자가 많다. 멀리 육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와 그에게 레슨을 받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회원은 올해 97세인 주말골퍼다. 유 감독은 “97세 회원이 계신데 여전히 18홀을 거뜬히 돈다. 드라이버도 140m 정도 보낸다. 최근 그분이 ‘왜 이렇게 3번 우드가 뜨지 않느냐’고 고민을 토로했다. ‘3번 우드 대신 다른 채로 치시라’고 답해 드렸다”며 웃었다.

유백만 감독이 제주 서귀포 돈내코에 있는 집 앞 정원을 돌보고 있다. 유백만 감독 제공


유 감독은 주 3회 정도 레슨을 하고, 주 4일은 자신의 몸에 투자한다. 그는 골프에 필요한 근력을 유지하기 위해 피트니스센터에서 하체와 복근을 중심으로 꾸준히 운동을 한다. 또 유연성 운동과 함께 스트레칭도 틈틈이 해준다. 한 번 운동을 할 때마다 1시간 반 정도를 한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쉬엄쉬엄하는 편이다.

유산소 운동을 위한 공간은 집 근처 곳곳에 있다. 차로 10분만 타고 나가면 곳곳에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우거진 오름이 곳곳에 있다. 역시 무리하지 않고 1시간에서 한 시간 가량 천천히 언덕길을 오르내린다. 아내 이정자 씨(77)와 함께 갈 때도 많다. 그는 “아내와 함께 서귀포 이승악 오름을 자주 다닌다. 작년에만 집사람과 40번 이상 다녀 왔다. 목적지까지 산길로 왕복 90분 정도 소요되는데 산길임에도 평지도 많아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고 했다.

유백만 감독이 제주의 한 피트니스센터에서 하체 운동을 하고 있다. 유백만 감독 제공


에이지 슈트를 유지하기 위해 골프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회원들의 레슨에 앞서 일찍 연습장에 가 샷을 가다듬곤 한다. 그가 주말골퍼들에게 추천하는 연습은 이른바 ‘삼각형 방식’이다. 드라이버 등 긴 채를 적게 치고, 웨지 등 짧은 클럽으로 많은 연습을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몸에 큰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유 감독은 “내 경우를 얘기하자면 1시간 연습을 하면 30분 이상을 10~20m 짧은 거리를 연습하는 데 할애한다. 드라이브는 채 20개도 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또 “골프를 잘 치려면 연습밖에 없다. 좋은 코치를 만나 올바른 자세로 꾸준히 치다 보면 누구나 잘 칠 수 있다. 평범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야구 선수 시절부터 그는 성실의 아이콘이었다. 다른 선수들이 술을 마시고 음주를 즐길 때도 그는 술과 담배를 멀리했다. 그리고 달리기 등 다른 선수들이 좋아하지 않는 훈련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그는 “아마 당시 김성근 감독(현 최강야구 감독)과 내가 가장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싶다”며 “어쩌면 그때 운동을 조금 덜 했더라면 지금 몸이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고 했다.

젊은 시절부터 단련해온 몸에 현재까지 철저한 자기관리가 이어지고 있으니 그는 80대 중반에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파워 넘치는 스윙을 한다. 지금도 드라이버 거리가 240야드 이상 나간다. 완벽한 회전에 정확한 임팩트를 보고 있자면 프로의 향기가 절로 느껴진다.

지난해 한라산 정상에 오른 유백만 감독의 모습. 유백만 감독 제공


오랫동안 골프를 치면서 그는 골퍼로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다 이뤘다. 그 어렵다는 홀인원도 11차례나 기록했다. 2002년 말레이시아 방이CC에서는 파5홀에서 두 번째 샷만에 홀에 공을 집어넣어 알바트로스까지 해 봤다.

지금도 주 3회는 필드에 나가고 나갈 때마다 에이지 슈트를 하니 이보다 축복받은 인생은 없을 듯하다. 유 감독은 “골프를 오래 치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것은 부상을 당하지 않고,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사실 사람 일이라는 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매사에 겸손하고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83세이던 지난해 그는 한라산 정상에 올랐다. 그가 희망하는 마지막 목표는 91세에 다시 한 번 한라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그는 “몸 관리를 잘해 91세에 다시 한번 한라산 등정을 하고 싶다. 공식 기록은 없지만 90세가 최고령 등정이라고 한다. 하루종일 걸리더라도 91세에 꼭 한라산 정상을 밟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