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관심이 대선으로 옮겨가고 있다. 현재 모두의 참고 사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상황이다. 이 예상 시나리오가 적중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의 예측은 “그렇다, 여당의 ‘자기 충족적 예언’이 다시 작동한다면”이다.
소위 ‘태블릿 PC’ 논란 이후 박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동반 추락했다. 한국갤럽의 데일리 오피니언 조사를 보면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은 2016년 총선 직후 ‘친박’, ‘비박’ 간 공천 갈등 여파로 30%까지 하락했다. 그리고 넉 달 만에 ‘태블릿 PC’ 논란으로 10%대로 급락했고 2017년 조기 대선에서는 예상대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후 보수 정당 지지율은 거의 5년(245주)간 민주당에 뒤졌고 한때 정의당에도 뒤졌다.
‘탄핵 시즌2’도 판박이다. 총선 대패 후 역대급 여소야대로 원활한 국정 운영이 불가능해지자 대통령이 사상 초유의 비상식적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그 열흘 후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통령 지지율은 10% 초반대로 급락했고 여당 지지율도 20%대 초반까지 하락하여 민주당과 더블 스코어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이달 17∼19일 실시된 한국갤럽의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를 보면 이재명 대표가 37%로 1위였고 여권 주자 모두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그 절반도 안 됐다. 심지어 5%를 넘는 후보조차 없었고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경북에서도 이 대표(19%)가 1위였다.
당시 후보들의 지지율 추이도 ‘대세론’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필자가 지지율 조사 전수를 모아 메타분석한 결과를 보면 문 전 대통령의 유력한 대항마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선거 초반 문 전 대통령을 앞서기도 했으나 귀국 직후 지지율이 급하락하자 갑자기 안희정 전 지사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문 전 대통령은 안 된다’고 생각한 유권자들이 안 전 지사로 급선회한 결과로 해석된다. 안 전 지사의 민주당 경선 패배 후 안철수 의원 지지율이 1주일 사이 거의 두 배로 치솟아 일부 조사에서는 문 전 대통령을 오차범위 내에서 추월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몇 다른 조사에서 문 전 대통령에게 한참 뒤지자 안 의원 지지율 하락이 시작됐고 그제야 홍준표 현 대구시장의 지지율 상승이 시작됐다. ‘대항마 찾기’를 포기한 보수 유권자들이 회귀한 결과로 해석된다.
2017년 대선을 결정지은 진짜 원인은 새누리당 내부의 ‘자기 충족적 예언’으로 볼 수 있다. ‘자기 충족적 예언’은 1948년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 제안한 개념이다. 어떤 사람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결국 그 믿음이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믿음 형성→행동 결정→믿음 현실화’라는 ‘자기 충족적 예언’의 역학이 작동한다면 국힘 내부에서 “탄핵으로 ‘이번 선거는 이길 수 없다’”는 ‘믿음’이 형성되고 이기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대선 이후 당권을 장악하여 차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으로 행동할 것이다. 서로 이런 ‘자기 충족적 예언’에 기반하여 행동하다 보면 후보 단일화는 불가능하다. 2017년 대선 때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던 여러 후보가 난립하여 문 전 대통령을 41.1%의 낮은 득표율로 당선시켜 준 바로 그 상황이다.
이번에도 국힘의 ‘자기 충족적 예언’이 작동할까. 이미 그래 보인다. 한동훈 대표는 사퇴했고 ‘친윤’ 당권 장악으로 분당설도 나온다. ‘여론 재판’ 성격이 강했던 박 전 대통령 탄핵과는 달리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발동하여 군을 움직였다. 현 국힘 지도부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 작동하여 ‘비상계엄’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가진 대선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필패 카드’라고 생각할 다른 가능성 있는 후보들은 ‘자기 충족적 예언’에 기반하여 탈당 후 출마 가능성이 높다. 그리 되면 2017년 대선의 재판이 될 것이고 역사는 ‘탄핵 여파’라 기술하겠지만 사실 ‘자기 충족적 예언의 결과’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