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홍유순은 여자프로농구 신인 최초로 4경기 연속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2024~2025시즌 신인왕을 예약했다 . 용인=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고교 시절부터 ‘국보센터’라 불린 박지수(26·갈라타사라이)가 2016~2017시즌 세웠던 신인 최다 연속 더블더블 기록(3경기)도 갈아치웠다. WKBL이 단일리그로 치른 2007시즌 이래 신인이 4경기 연속 더블더블을 기록한 건 홍유순이 최초다.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홍유순은 팬들 앞에서 농구를 해본 적이 없던 선수다. 재일교포인 홍유순은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다만 한국 국적으로 재일 조선학교에 다니며 농구를 처음 배웠다. 이후 오사카산업대에서 대학리그 선수로 뛰었지만 프로 경험은 없었다. 홍유순이 뛰던 코트 관중석에는 늘 부모님, 친구의 부모님 등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들뿐이었다.
올스타 휴식기인 23일 용인 신한은행 블루캠퍼스 훈련장에서 만난 홍유순은 “초반에는 한국에서 농구하는 것 자체도 실감이 안 났는데 요즘에는 경기도 많이 뛰고 주목도 받으면서 ‘ 내가 한국 WKBL 선수구나’를 좀 실감하고 있다. 올스타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며 웃었다.
WKBL 신인 최초 4경기 연속 더블더블을 기록한 홍유순은 올스타 휴식 이후 연속 더블더블 기록 이어가기에 도전한다. 용인=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하지만 홍유순은 연속 기록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보다 당장 경기를 뛰지 못하는 게 더 걱정이라고 했다. 홍유순은 “최근 출전 시간이 늘면서 경기 감각이 올라왔는데 올스타 휴식기 때 쉬면서 감각이 떨어질까 봐요”라고 했다.
홍유순은 최근 5경기는 모두 35분 이상 뛰었다. 특히 9일 BNK전 때는 데뷔 후 처음으로 1초도 쉬지 않고 40분을 모두 뛰었다. 데뷔 초 9경기 동안은 평균 13분 남짓 뛰었던 선수에게는 벅찰 수도 있을 터. 하지만 홍유순은 “일본에서는 선발 출장하면 웬만하면 교체 없이 40분 내내 뛰었다. 중, 고등학교 때부터 쭉 그랬다. 체력은 자신 있다. 힘들진 않다”며 “앞으로도 40분 뛸 자신이 있다”고 했다.
국내 팬들에게는 ‘갑툭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홍유순은 중학생이었던 2017년 WKBL 신인드래프트장을 찾은 적이 있다. 홍유순은 “당시 일본에서 농구 에이전시를 하시던 재일교포분이 데려와 주셨다. ‘WKBL에도 재일교포 선수가 있다. 여러분도 도전할 수 있다’고 하셔서 WKBL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했다.
홍유순이 당시 드래프트장 먼발치에서 보고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었던 재일교포 선수는 지금 소속팀 신한은행에서 일본 선수 통역을 맡고 있는 황미우 매니저(33)다. 황 매니저는 2017~2018 W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삼성생명에 1라운드 5순위로 지명돼 WKBL에 진출한 첫 재일교포 선수가 됐다.
황 매니저는 현재 팀의 일본인 선수 타니무라 리카의 통역을 전담한다. 기본적인 한국어는 할 줄 아는 홍유순은 평소 통역 없이 훈련을 소화하지만 모르는 게 있으면 늘 황 매니저에게 도움을 청한다. 홍유순은 “당시만 해도 내가 프로 선수가 될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그때 본 언니와 이렇게 한 팀에서 다시 만난 게 정말 기적 같다”고 했다.
홍유순은 또 다른 목표 중 하나인 ‘한국 국가대표’도 지난해 살짝 체험해 봤다. 지난해 일본에서 재일교포 선수들과 3 대 3 팀으로 트리플잼 대회를 준비했는데 국제농구연맹(FIBA) 3 대 3 아시안컵 출전을 준비하던 한국 대표 선수들의 훈련 파트너로 진천 선수촌에서 함께 훈련했기 때문이다. 홍유순은 “선수촌 웨이트장이 정말 커서 놀랐다. 2주 정도 지냈는데 밥도 너무 맛있고 너무 좋았다”며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한국에서 선수로 뛸 수 있을 줄 몰랐다. 다시 한국 농구 국가대표로 진천에 가게 되면 감회가 정말 새로울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던 이날에는 12일 뇌종양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구나단 신한은행 감독이 수술 후 처음 훈련장을 찾았다. 수술 이후 홍유순의 활약을 흐뭇하게 지켜봤던 구 감독은 “정말 히트상품 아니냐(웃음). 저희가 1순위 추첨권을 얻고 재일교포 선수 후보군을 놓고 볼 때부터 유순이는 독보적이었다. 정말 빠르고 특히 체력이 타고났다”며 “아이돌로 비유하자면 ‘확신의 센터상’이다. 코치진의 이번 시즌 프로젝트가 ‘유순이 신인왕’이었다. 제 수술도 잘 된 만큼 선수들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용인=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