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blo español(나 스페인어 할 줄 알아)”
무대에 올라온 동양인이 3초 후 내뱉은 첫 마디에 관객들 모두가 폭소를 터뜨린다.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멕시코 관객들에게 생소한 동양인 코미디언이 내뱉는 ‘나 너희 말 할줄 알아’는 무엇보다 훌륭한 코미디다.
KBS 공채 코미디언 출신 김병선 씨(37)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스페인어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코미디언이다. 군 복무 시절 연이 닿은 스페인어를 통해 현재는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하고 있다. 100만 명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 ‘코미꼬(comico: 스페인어로 코미디언을 뜻하는 말)’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3일 멕시코시티에서 만난 김 씨가 코미디 클럽 앞에서 자신의 에세이집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멕시코시티=정서영 기자
●서울대 체교과 출신 코미디언이 멕시코로 떠난 사연
김 씨는 스스로를 “특별한 길, 하고 싶은 것을 찾아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가수 엄정화의 경호원이 되고 싶어 경호원을 꿈꿨지만 ‘경호 받는 사람이 되라’는 은사의 말에 대학 입시에 도전, 재수 끝에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합격했다.
대학 이후에도 김 씨는 특이함을 찾았다. 군대를 또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해 해병대, 카투사, 학사장교 등 ‘색다른’ 군 복무를 찾았고, 국제봉사를 할 수 있는 코이카 국제협력봉사요원에 합격해 2년 간 페루 시골마을에서 복무했다.
스페인어를 처음 접한 것도 이 때였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페루 현지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해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전역 후 우연하게 치른 공채 코미디언 시험에 합격했지만 몇 년을 일해도 자기 캐릭터 하나 없던 찰나, 우연한 기회로 페루에서 K-푸드 관련 행사 진행요원을 맡게 됐다. 어느 정도 할 줄 알던 스페인어로도 현지인들이 웃는 걸 보고 그는 ‘스페인어 하는 동양인’을 자신의 미래 캐릭터로 잡았다.
그런 그에게 우연한 기회로 마드리드에서 접한 스탠드업 코미디는 충격이었다. 3~4시간을 대기하고 10분 내외로 나오던 공개 코미디와 달리 혼자서 1~2시간 무대를 이끌어가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김 씨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꿈을 꾸게 된 계기’로 그 때를 회상한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데서 발생했다. 당시 일하던 축구팀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스페인에서 추방될 위기에 처한 것. 집도 돈도 없는 상황에서 당시 여자친구 집에서 거주하며 닥치는 대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할 무대를 찾았다.
‘오픈 마이크’ 무대를 찾게 된 때도 이때다. 바나 음식점 등 열린 공간에서 마이크 하나로만 무대를 구성하는 오픈 마이크는 아무나 올라가서 아무 얘기나 할 수 있는 곳이다. 대부분 코미디언들은 오픈 마이크에서 새롭게 쓴 농담을 시험하지만 대본 하나 없던 김 씨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 줄 몰랐다.
“안녕 나는 김병선이야. 한국에서 왔고…”
“너희는 나를 중국인으로 보겠지만, 나 중국인 아니야. 나 직업이 없거든.”
스페인 관객들은 말 그대로 빵 터졌다. 우연찮게 내뱉은 한 마디는 ‘중국인들은 맨날 일만 한다’는 현지의 고정관념을 제대로 비튼 펀치라인이었다. ‘스페인어 하는 동양인 코미디언’이 나아갈 지점이 보이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순간의 기쁨도 잠시, 별다른 기회가 없던 김 씨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어떠한 기반도 뭣도 없다고 느낀 시점에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다시 찾아왔다. 임용고시를 위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치르고, 공개 코미디 복귀도 옵션으로 고민했다.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이던 순간이었어요. 새로운 기회를 위해 찾은 스페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곳에서도 실패했구나.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남의 시선을 신경쓸 수 밖에 없던 순간들이었죠.”
답답한 마음에 유튜브를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스페인어로 이런저런 콘텐츠를 만들다보니 스페인어에 대한 꿈도 다시 키웠다. 실패를 맛봤던 스페인은 싫었고, 서어권 중 가장 인구가 많은 멕시코를 떠올렸다. 멕시코의 코미디신을 탐방하기 위해 무작정 ‘한 달 살이’를 생각하고 떠났다.
낯선 땅은 의외로 호의적으로 다가왔다. 멕시코시티 중심부의 ‘멕시코 광장(Parque de Mexico)’에서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고 ‘이 나라는 괜찮겠다’는 확신이 왔다. 현재는 아내가 된,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함께 멕시코 정착을 결정했다. ‘10년 내로 좋은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약속을 하고 멕시코로 넘어온 지 2년 반, 지금은 멕시코 내에서도 유명한 코미디언에, 10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로 거듭났다.
“일단 하고보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네요. 모든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김 씨는 이렇게 답했다.
●30분을 위한 2년
여느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그렇듯, 김 씨의 코미디에도 경계는 없다. 인종, 종교, 성, 문화 등등 모든 소재를 가지고 농담을 한다.
“멕시코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멕시코에 온 걸 환영해’라고 해요. 짓궂더라도 농담이 일상화된 거죠. 코미디언으로서는 좋은 환경입니다.”
김 씨가 자신이 자주 서던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멕시코 정착 초반기 유명 코미디언만 오를 수 있던 무대로, 김 씨는 수많은 오픈마이크 공연을 거쳐 이 무대에 오르게 됐다. 멕시코시티=정서영 기자
“나는 이래서 멕시코가 너무 좋아. 여기 살다보니 나도 멕시코 사람처럼 된 것 같아. 멕시코인들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살게 됐어. 그래서 평생 살고 싶어.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은 모두 일상적으로 자기만의 농담 루틴이 있다. 어느 정도 검증을 마친 농담들이다. 농담 하나 하나, 시간의 살을 붙여나가고 이를 전체적으로 완성하면 그때는 하나의 대본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미디언들은 몇 시간 짜리 루틴을 가지고 있다.
현재 김 씨의 루틴은 30분 정도. 1시간을 채워 하나의 공연을 하는 게 김 씨의 목표다. 2년 반 동안 30분을 채운다면 적다고도 할 수 있지만, 김 씨는 ‘점점 살이 붙을 것’이라며 자신한다.
“코미디언들 사이에선 ‘첫 1시간을 채우면 그 다음은 쉽다’고 말해요. 살을 붙여나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거죠. 1시간이라는 목표를 먼저 세운 이유죠”
조크의 소재는 어디서나 온다. 가족과 시간 보내기, 산책, 여행, 운동 어디서든 영감을 받는다. 같은 농담이라도 사전에 친 농담,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김 씨는 항상 루틴을 고민하면서 농담의 위치도 고민한다. 한 번 소재가 떠오르면 오픈마이크에 가서 검증을 받고, 반응이 안 좋으면 수정하면서 농담의 살을 붙여 나간다.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는 순발력도 중요하다. 관객과 상호작용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그때그때 재치를 발휘하는 능력도 코미디언의 역량이다. 김 씨는 순발력을 기르는 방법으로 경청을 꼽았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의도까지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생각보다 안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도 이런 의도를 파악하는 훈련을 매일 하려고 노력합니다.”
●“코미디는 삶의 태도”
10년의 목표를 향한 여정(김 씨의 아내는 7년을 제시했다)을 두고 2년 반을 지나온 김 씨는 ‘좋은 코미디언’을 향한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자기가 웃기다고 생각하는 내용으로 다른 사람들도 웃게 하는는, 소위 말하는 ‘타율’이 좋은 코미디언이 김 씨의 목표다.
“지금은 농담 10개 중 1할 정도 웃긴다고 보면, 이게 4할까지 올라가면 진짜 좋은 코미디언 아닐까요?”
코미디언을 꿈꾸는 유망주들에게도 김 씨는 제언을 아끼지 않았다.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한 마디’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 씨는 ‘삶의 태도를 코미디로 가져가라’고 했다.
“유튜브 등으로 누구나 코미디를 올릴 수 있는 세상입니다. 본인이 재밌다고 생각하면 ‘나도 코미디언이다’라고 생각하고 도전하면 되지 않을까요. 코미디는 직업이 아닌 삶의 태도입니다.”
김 씨는 오늘도 불러주는 무대를 찾아 멕시코 이곳저곳을 누빈다. 유튜브에 자신이 성장하는 과정도 꾸준히 기록한다. 1년에 한 번씩 한국을 찾아 한국 관객들을 대상으로 공연도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가장 좋은 순간’을 물었다.
“코미디언이 뭐가 좋겠습니까. 내 농담에 사람들이 ‘빵’ 터졌을 때 아닐까요.”
멕시코시티=정서영 기자 ce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