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성탄 즐기는 중국 종교 시설 등 성탄 명소 방문객 몰려… “예쁜 사진 찍기 좋은 날” 인증샷 세례 中, 종교 활동에 까다로운 조건 내세워… 성탄 미사도 중국인-외국인 따로 상하이-홍콩에서는 대규모 성탄 행사… 내수 진작 위해 성탄 배격 추세 잠잠
22일 중국 베이징의 한 특급호텔 로비에서 방문객들이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최근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이곳을 포함해 성탄절 명소 등이 많이 올라와 있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이처럼 성당 근처의 풍경만 보면 중국의 성탄절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고급 호텔과 백화점 같은 곳에선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대형 트리가 반짝이는 전구와 소품으로 꾸며지는 건 같다. 또 ‘인생샷’을 남기려고 화려하게 꾸미거나 독특한 코스튬(복장)을 하고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다만 호텔이나 백화점 등에선 화려한 성탄절 장식 속에서도 ‘크리스마스 캐럴’은 들리지 않는다. 또 천사, 십자가, 아기 예수처럼 종교적 색채를 띤 성탄절 소품도 없다.
중국 지인들에게 ‘중국에서도 성탄절을 기념하느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대답하기 어려워한다. 중국 역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성탄절을 즐기는 문화가 생겨났고, 서양의 다른 나라처럼 연말 특수를 노린 상점들이 관련 조형물들을 설치한다. 하지만 종교적 의미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법정 공휴일도 아니다.
심지어 매년 12월이면 성탄절을 기념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각에선 성탄절은 외국 명절로 서양 문화를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은 어리석고 치욕적인 일이라고 주장한다. 2017년과 2021년에는 일부 지방정부와 공산당 지부에서 성탄 관련 행사를 금지한다는 공지를 내리기도 했다.
성탄절을 배격하는 분위기는 2010년대 중반부터 강해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5년 ‘종교의 중국화’라는 개념을 도입했고, 2018년 종교사무조례를 개정해 종교 활동에 대한 지침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중국 지도부는 춘제(春節·음력 설) 등 중국 전통 명절을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정책도 펼쳤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과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중국에서 성탄절 분위기를 느끼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게 중국 현지의 반응이다. 실제로 상하이나 홍콩 등 서양 문화가 보편화된 일부 도시를 제외하면 길거리나 건물 외부에 성탄절 조형물을 설치하는 사례가 최근 몇 년 새 많이 줄었다.
● 중국인과 외국인은 함께 종교 활동 참여 불가
2018년 중국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종교인은 약 2억 명, 성직자는 38만 명으로 추산된다. 주로 불교와 도교 신자가 많고, 개신교는 3800만여 명, 천주교는 약 600만 명이다.
다만 미국 국무부는 매년 발간하는 ‘국제종교자유 보고서’를 통해 “중국에서는 여전히 종교 단체를 통제하고, 종교인들의 활동과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올 7월 “해당 보고서는 거짓과 이념적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중국은 법에 따라 시민의 종교·신앙의 자유를 보호한다”고 반박했다.
시 주석 시대에 종교 활동에 대한 지침이 강화됐다는 평가가 많지만, 일상에서 종교에 대한 노골적인 통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종교 활동과 관련된 까다로운 조건이 많다.
22일 한국 천주교 사제와 신자들이 중국 베이징 시즈먼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한인 성당들은 중국 성당을 빌려 중국 측이 정해준 시간에 미사를 드려야 한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한인 교회도 사정이 녹록지 않다. 중국에서 종교 관련 규정이 강화된 2018년 전후로 중국 내 한인 교회 여러 곳이 갑작스레 폐쇄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과거 베이징 한인 교회 가운데 일부는 중국 측으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아 대면 예배를 진행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당시 장소 사용 허가가 모두 취소됐고, 중국 측에서 지금까지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현재 베이징에 7곳의 한인 교회가 남아 있는데, 대부분 온라인 예배 등으로 종교 활동을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내수 중시 정책에 성탄절도 부활?
다만 올해 길거리나 상점에서 성탄절 분위기가 이전보다 강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베이징의 왕푸징이나 산리툰 등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지역에 건물 내부는 물론 외부에도 크리스마스 장식과 전등을 설치한 매장이 크게 늘었다는 것. 소셜미디어에는 저장성 등 중국 지방의 쇼핑몰 등에 화려한 성탄절 장식이 설치된 모습들이 자주 올라온다. 특히 올해는 성탄절을 금지해야 한다는 논쟁도 줄었다는 평가가 많다.
바로 경기 침체 때문이다. 오랜 매출 부진에 시달린 레스토랑이나 명품 가게 등 고급 상점들은 성탄 특수를 누리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내수 진작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중국 정부도 성탄절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눈감아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상하이에서는 와이탄 지역의 상점 거리 전체를 전등과 성탄 장식으로 꾸미는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 행사가 올해도 열렸다. 홍콩에서도 지난달 말부터 불꽃놀이를 포함해 각종 성탄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다. 현지 매체들은 “올해 성탄절부터 새해 초까지 국내외에서 약 1300만 명이 홍콩을 찾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 소비 심리가 회복될지는 미지수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중국 젊은이들은 성탄 명소를 찾아다니지만, 실제 매장을 이용하거나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편이다. 실제로 22일 저녁 성탄 트리와 장식으로 꾸며놓은 호텔 식당에는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로 가득했지만, 20여 개의 식당 테이블 가운데 단 2개만 채워져 있었다. 성탄절에 구매력이 큰 외국인들이 중국에서 많이 빠져나간 점도 성탄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요인이 되고 있다.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