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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 혁신은 대구한의대가 국가대표… “‘SKY ’ 보다 낫습니다”

입력 | 2024-12-26 03:00:00


변창훈 대구한의대 총장이 13일 경상북도 경산시 대구한의대 본부에서 학교 혁신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구한의대 제공

‘한의대가 혁신할 게 뭐가 있나요?’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지방대 살리기, 이를위한 전면적인 혁신과 대학 간 통합이 교육계의 화두가 된 가운데 대구한의대 변창훈 총장이 어디에서든 많이 받는질문이다. 

지방대마다 강도 높은 구조 개혁을 진행하고 있는 마당에 한의대는 현상 유지만 하더라도 어려움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한의학 전공 자체만으로 우수 학생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에 학사 운영 구조를 완전히 바꾸거나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성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구한의대는 올해 교육부의 ‘글로컬 대학 30 사업’(교육부가 2026년까지 비수도권 대학 30곳을 세계화·지역화 시키는 대학으로 지정하는 정책사업, 학교별로 5년간 1000억 원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

대구한의대는 한의학을 근간으로 개방·연결·확산의 대학 혁신을 통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더불어 지역을 살리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변 총장은 지난 8월 교육부의 글로컬대학 30 사업 대상자 선정 소식을 외국 출장을 가는 공항에서 들었다. 해외 대학과 한의학 교류 등을 논의하기 위해 출국하는 길이었다. 변 총장은 크게 기뻐하지도, 동요하지도 않았다. 학교 입장에서는 큰 사업을 따낸 셈인데도 담담할 수 있었던 속내가 궁금했다. 

13일 경북 경산시 대구한의대 본부에서 만난 변 총장은 “우리대학의 혁신계획은 (글로컬대학 30 사업 선정 여부에 상관없이)대구한의대만의 색깔을 찾는 혁신안이기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한의학은 종합철학… 확장성을 믿었다” 

“반대로 생각해서다.”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선정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변 총장은 힘줘 한마디로 정리했다. 한의학에 고정 프레임을 씌울 수는 없다고 봤다. 한의학의 확장성과 수용성을 믿은 것이다. 

실제로 외부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대구한의대는 한의학의 현대적 재탄생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전통 한의학에 새로운 학문 영역을 접목하며 그 지평을 넓혔고, 이를 학교 구조와 체계에 유기적으로 녹여내어 한의학의 확장 가능성을 끌어냈다. 이는 민족의학이 과학화, 세계화, 산업화로 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밀어붙인 노력들이다.

“글로컬대학 사업 준비를 1, 2년만에 한 게 아닙니다. 15년 간 준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한의학에서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이 있어요. 음식과 약의 근본, 뿌리는 같다는 거죠. 친자연적인 소재로 화장품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뷰티’ 산업으로 연결하는 식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의학은 수용성이 강한 종합철학이라고 저는 봅니다.” 

지난해와 올해 글로컬대학 30 사업에 선정되려는 대학들이 내민 핵심 전략은 통합과 연합이었다. 선정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 대학 간 통합과 연합에 불이 붙었다. 실제로 통합을 내세운 대학들이 사업 대상자로 많이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한의대는 다른 대학과 연합을 포기했다. 

“한 달 넘게 고심을 했어요. 그런데 통합하면 우리 색깔이 희석되고 성과를 내지 못 할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한의학이 뻗어나갈 수있는 확장성을 확인하고,수요를 확실하게 찾았기 때문에 ‘홀로서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면서 지역과 글로벌 진출을 동시에 추진하는  ‘투 트랙’ 전략을 꺼냈다. 그리고 경산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K메디(MEDI) 특화벨트(G벨트)로 연결하려는 시도에서 뷰티 분야가 선두에 나섰다.

“2004년에 학교에 화장품에 한의학을 접목한 화장품 공장을 세웠어요. 이제는 대구한의대의 가족기업과 스크럼을 짜고 연구·개발, 생산을 통해 태국, 베트남 등에 한방 화장품, 기능성 소재, 식품, 재활 치료 분야 등 융합 제품 등을 수출해 1000만 달러 실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화장품 공장에서 ‘자안(Jaan)’ 브랜드를 제조해 판매하고, 대학 간 협업을 통해 숙명여대와 공동 브랜드 화장품 ‘라모니(Lamoni)’도 출시했다. 앞으로 경북지역의 바이오, 재활의료, 소재 산업분야 관련 기업과 창업기업 200개를 육성하여 5000만 달러 수출이라는 목표도 세웠다. 이를 통해 지역 정주 인구 확산과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한다. 

대구한의대는 국제협력선도대학 육성지원사업을 통해 베트남 호치민기술대학에 화장품공학과를 개설했다. 이를 기점으로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잇는 이른바 ‘K-메디 실크로드’도를 개척하겠다는 계획을 마련하였다.

“특히 해외에서는 자국의 전통의학을 키우는 데 있어서 한의학의 도움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들의 전통의학 효능을 우리가 입증해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이나, 몽골 등에서는 자국 전통의사들의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요.” 

프랑스 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도 한의학이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프랑스도 휴게소에 가면 감초 같은 약을 그대로 팔아요. 일본도 갈근탕을 많이 쓰죠. 선진국도 친자연적인 약에 대한 거부 반응이 차차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세계 신약시장은 부작용이 많지 않은 천연물 개척 시장으로 가고 있어요. 검증 안 된 천연물 효능 검증을 하는 데도 한의학이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 멀티심마니? “한의과학자100명 양성할 것”

대구한의대는 한의과학자 100명 양성 계획도 갖고 있다. 글로컬대학 30 기획서에도 이점을 강조했다. 한의학을 다재다능하게 다룰 수 있는 국제적 감각을 갖춘 전문가이면서 K-메디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연구인력을 키우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대학원 한의학과 K-메디 분야를 취득하는 학생이 대상이다.

“임상을 주로 하는 한의사와 달리 한의학을 바탕으로 메가테크를 융합하여 창업으로 이어지게하는 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키우는 겁니다. 한의학의 새 사업 영역을 발굴하고 그것을 세계시장 궤도에 올려놓는 인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계획에 100명은 적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변 총장의 생각은 다르다.

“100명 양성 추진으로 대구한의대는 학생들에게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정관념에 갇힌 대학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겁니다. 학생들은 ‘특별한’ 학교를 다닌다는 자부심도 생길 겁니다.”

학생들의 글로벌 역량 향상에도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현재 입학정원이 1400명인데, 연간 600명을 외국으로 보내고 500명의 유학생들을 받으려고합니다. 글로벌 학생들이 경계 없이 한의학을 중심으로 섞이면서 대학이 추구하는 방향으로의 일꾼 양성을 위한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정착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스웨덴 말뫼 대학처럼 갈 것”

변창훈 총장이 학내 구성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구한의대 제공

이런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화장품 공장을 처음 세웠을 때 지원도 못 받고,하찮게 보는 시선도있었습니다. 그럴 때 의기소침하고 혁신을 그만뒀으면 지금의 대학은 없었어요. 혁신의 성과만 놓고 본다면 우리가 국가대표입니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도 못한 일이라 자부합니다.”

현재 학교 분위기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변 총장은 주마가편의 심정으로 변화의 속도를 높일 생각이다.

“이전의 ‘대구한의대’와 글로컬 대학으로 ‘대구한의대’는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대학이 혁신을 통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에서 통하는 경쟁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 변화 흐름에 대한 구성원들의 기대가 큽니다.”

학교 혁신을 위한 ‘밑판짜기’는 이미 실행되고있다. 경북 청도와 영덕의 로컬캠퍼스와 몽골, 베트남, 우즈벡 등의 글로벌캠퍼스 등에 설치한 ‘노마드캠퍼스’와 K-MEDI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학사구조 개편 등이 그것이다.

“2028년까지 7개의 로컬캠퍼스와 10개의 글로벌캠퍼스를 구축합니다.지역 내 정주형 인재 양성과 글로벌 인재 교류를 확대할 계획입니다.구체적 운영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경북도와 영덕군과 함께 ‘K-MEDI 전통의학 실크로드 국가협의체’ 실무자 포럼을 이달 17일부터 20일까지 진행했습니다. 몽골, 우즈베키스탄, 튀르키예, 키르기스스탄, 태국, 베트남 등의 실무대표단과 공동협약을 체결한 상황입니다.”

한의학과 한방 산업이 갖고 있는 벽을 계속 넘으려 한다.

“전통의학의 틀을 모든 과정에서 깨야 합니다. 지금은 AI(인공지능)시대죠. 글로벌 3대 MOOC (대규모온라인공개수업)플랫폼 중 하나인 유다시티와 협력해 한의학에서 AI역량을 갖춘 융복합 글로컬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이를 위해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하여 교육을 지원하는 ‘Edu-Portal’이 ‘글로컬대학 30 사업’의 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구 동구 혁신도시에 새로 개원한 대구한의대 한방병원은 벽을 깬 성과다.

“국내 최대 규모로 한방 및 양방 협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병원에는 대학병원급 양방 의료기기와 함께 한약제조 과정을 자동화한 스마트 탕전 시스템까지 도입했습니다.”

지역과의 동반 성장을 위한 준비 작업도 마무리 단계다.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캠퍼스별로 특화 분야를 정했습니다. 경산캠퍼스는 화장품, 재활의료 분야에 특화시킬 것입니다. 영덕캠퍼스는 스마트팜과 기능성 소재, 식품 분야 등의 전문 캠퍼스로 만들어질 겁니다. 청도캠퍼스는 기능성 소재, 식품, 치유 분야로 특화시키는데, 한의학 기반 산업 활성화를 위해 창업혁신파크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변 총장은 이런 과정을 통해 대구한의대를 ‘대체불가’한 교육기관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구글이 선정한 최고의 미래학자인 토마스 프레이 다빈치 연구소 소장은 ‘2030년에는 세계 대학 절반이 사라진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와 AI의 시대에는 ‘전통적인 대학’이 쓸모가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대구한의대도 지역, 전국의 일반 사립대와 차별화지 못하면 절대로 미래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우리를 대신할 수 없는,‘대체불가재’로의 대구한의대를 만들고자 합니다.”

스웨덴의 말뫼 대학을 롤모델로 학교혁신의 동기부여로 삼고 있다.

“스웨덴의 항구도시 말뫼는 조선업의 위기로 인한 지역 소멸의 위기에서 대학을 설립해 제조업 기반에서 정보기술과 바이오 중심 도시로 탈바꿈하고 살아났습니다. 인구가 22만명에서 30만명까지 늘어났죠. 말뫼는 OECD가 선정하는 세계혁신도시 4위에, 대학교는 스웨덴 학생들이 뽑는 스웨덴 최고대학으로 선정됐습니다. 지역을 살리는 혁신대학이라는 측면에서 닮고 싶은 대학입니다.”

변 총장은 “혁신은 ‘가죽을 고쳐서 새롭게 한다’는 뜻”이라며 “한 사람이 변화하는 것도 어려운데 조직 전체가 혁신을 통해 변화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이어 “과거의 관습과 폐쇄적인 것을 버리고 개방,연결, 확산으로 혁신방향을 정해 나아가고 있다”며 “총장이 해야 할 일은 혁신의 모멘텀이 지속될 수 있도록 앞장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경산=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