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침체 가속 자영업자 직격탄
비상계엄 이후 정치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올해 연말 소비 심리가 급속히 얼어붙었다. 내수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는 소득과 신용도 하락으로 빚 부담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수출 둔화 우려 등으로 11월 소비자심리지수가 하락했는데, 이달 초 비상계엄 사태가 지수 하락 요인으로 추가됐다”고 말했다.
꽉 닫힌 ‘연말 지갑’… “중식당 대신 마트 양장피” “여행도 포기”
정국혼란에 ‘연말 특수’ 사라져
계엄 이후 연말 회식-모임 줄취소
카드 사용액 급감… 기부도 위축
“내년 상반기까지 경기침체 이어져… 정부-여야 신속히 대책 마련해야”
24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형마트. 크리스마스이브인데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델리 코너를 서성이던 최순희 씨(44)는 이날 저녁 친구들과의 송년회를 준비하면서 유린기와 양장피를 살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는 “예전 같았으면 연말이니 중국집 가서 거하게 외식을 했을 텐데 그냥 간편식을 사서 집에서 먹기로 했다”며 “연말 모임 예산을 절반으로 줄이다 보니 2차는 아예 안 간다”고 말했다.정국혼란에 ‘연말 특수’ 사라져
계엄 이후 연말 회식-모임 줄취소
카드 사용액 급감… 기부도 위축
“내년 상반기까지 경기침체 이어져… 정부-여야 신속히 대책 마련해야”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감이 얼어붙은 내수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비상계엄 직후 닫힌 지갑이 ‘연말 대목’을 무색하게 하는 데다 내년 1%대 저성장 가능성까지 점쳐지면서 당분간 소비가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꺼져 가는 소비 불씨로 취약계층의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와 여야가 신속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한산하다. 집에서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면서 마트에선 델리와 신선식품 매출은 늘고 다른 품목 매출은 가라앉는 분위기다. 통계청 나우캐스트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6일까지 전국 신용카드 이용 금액은 직전 1주일보다 26.3% 감소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꽉 닫힌 지갑… 연말 대목 노린 소상공인 ‘울상’
한국은행에 따르면 비상계엄 이후인 4∼13일 신용카드 일평균 사용액은 2조5102억 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전 같은 기간보다 3%가량 감소한 것으로, 통상 연말 성수기에는 카드 사용액이 느는 것과 반대되는 흐름이다.
불안한 국내 정세에 연말 회식과 모임이 줄줄이 취소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식당에서 모임을 하는 연말이 전통적인 주류 판매 성수기인데 연말 특수를 다 놓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한 곳은 이달 주방용품과 퍼스널 케어(헤어케어·뷰티상품 등)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각각 10%, 5% 줄었다. 그나마 식품군 매출 증가세가 이를 상쇄하고 있지만 비식품군 매출이 떨어지면서 이달 매출 신장률은 전년 대비 ‘제로’다. 소비자 한 사람당 객단가가 높은 백화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안 그래도 물가가 비싸고 소비 심리가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비상계엄 이후 이어진 탄핵 정국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전했다.
● 치솟는 환율에 여행도 포기, 기부 행렬도 주춤
연말연시 기부행렬도 멈추면서 ‘사랑의 온도탑’은 100도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3일까지 모금한 금액은 3027억 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목표액(4497억 원)의 67.3%로, 목표액의 1%마다 1도씩 오르는 사랑의 온도탑은 현재 67.3도에 머물고 있다. 올해 주요 기업들이 이미 기부를 마친 상황이라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억 원 이상 기부한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신규 회원(20명)도 지난해(55명) 대비 절반 이상 줄었다.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1∼6월)까지는 경기 침체가 이어질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탄핵 이후 대선이 시작되면서 경기 기대감이 살아나 내년 상반기까진 소비 침체가 이어질 것 같다”며 “여야를 떠나 경제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정부 역시 신속하게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이민아 기자 omg@donga.com
세종=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