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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머리수리, 248년 만에 美 국조 지정…그 뒤편엔 ‘독수리 덕후’ 프레스턴 쿡이 있었다[사람, 세계]

입력 | 2024-12-25 12:58:00


은퇴한 부동산 투자자인 프레스턴 쿡은 60년 가까이 독수리 관련 물품을 수집해 왔다.  사진 출처 쿡 페이스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간) 흰머리수리를 공식적으로 미국의 국조(國鳥)로 지정하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흰머리수리는 1782년 미 대통령 국장에 등장한 뒤 달러화 지폐, 군복 등 여러 곳에서 미국의 상징처럼 사용되다 248년 만에 법적으로 ‘국조’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

이번 법안이 통과된 배후에는 평생 흰머리수리에 열정을 바친 ‘독수리 덕후’ 프레스턴 쿡(78)이 있다. 그는 법안을 직접 작성해 의원들을 설득했고, 올해 해당 법안은 상·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쿡은 NBC뉴스에 “이 법안은 아무도 무언가를 바꿀 필요가 없는, 단순히 역사의 실수를 바로잡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북미 지역의 토착종인 흰머리수리는 1782년 대륙회의에서 채택된 미국 대국장에 등장했다. 이후 미 화폐, 군복, 대통령 깃발 등 여러 곳에서 미국의 상징처럼 사용됐으나 ‘국조’로 공식 인정된 적은 없다.

2019년 자신이 발간한 미국의 독수리에 관한 책을 들고 있는 프레스턴 쿡. 사진 출처 쿡 페이스북

쿡은 2010년 자신의 ‘독수리 컬렉션’에 관한 책을 발간하기 위해 흰머리수리가 미국을 대표하는 새라는 공식적인 문건을 찾아 헤맸다. 그가 찾은 답은 “어떤 근거도 없다”는 것이었다. 주 상원의원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국조로 “추정된다”는 답변만 받았다. 미국은 장미를 국화(國花), 참나무를 국목(國本), 들소는 국가 포유류로 공식 인정했으나 흰머리수리는 그렇지 않았다.

몇 년간 침묵하던 쿡은 지난해 생일을 기해 “지금 내가 바꾸지 않는다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며 본격적인 ‘국조 만들기’ 작업에 돌입했다. ‘흰머리수리를 국조로 지정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작성하고 의원들을 설득했다.

쿡은 미 공영 NPR방송에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약간 도전이었다”고 회상했다. 의회에서 직접 조사한 끝에 흰머리수리가 국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법안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법안은 올 7월 상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하고 16일 초당적인 지지를 받으며 하원도 통과했다.

은퇴한 부동산 투자자인 쿡은 1966년 영화 ‘천 개의 광대(A Thousand Clowns)’에서 나온 “독수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대사에 영감을 받아 독수리 관련 물품 수집을 시작했다. 현재 그의 ‘독수리 컬렉션’은 약 4만 점으로 현재 미네소타주에 있는 ‘국립 독수리 센터’에 기증돼 있다.

흰머리수리는 법적으로 미국의 국조(國鳥)는 아니었으나 미국의 상징처럼 여겨져왔다. 사진은 2013년 9월 11일 미국 텍사스주 오데사에서 열린 맹금류 박람회에 등장한 25살의 흰머리수리. 오데사=AP 뉴시스

흰머리수리는 미국의 상징성 외에도 자연 보존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사례로도 여겨진다. 살충제 금지 조치(1972년) 등 연방 차원의 보호가 강화된 덕에 개체 수가 늘면서 2007년 멸종 위기종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미국 내 흰머리수리 개체 수는 약 31만6000 마리로 10년 전에 비해 4배 증가했다. 

미 국립 독수리 센터는 흰머리수리의 개체 수 증가와 국조 지정을 두고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를 두고 중요하게 여길 때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기꺼이 할 의지가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윤진 기자 k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