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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황형준]‘제2계엄’ 막으려면 계엄법부터 바꾸라

입력 | 2024-12-25 23:12:00

황형준 정치부 차장 


“대한민국은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와 폭거로 국정이 마비되고 사회 질서가 교란되어 행정과 사법의 정상적인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대한민국을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뜨린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이같이 밝힌 것은 우리 법상 비상계엄 선포 요건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헌법과 계엄법은 비상계엄에 대해 ‘대통령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돼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이 계엄의 요건에 맞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대다수의 평가다. 야당이 입법 독주를 하고 탄핵소추안을 남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해 군이 개입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회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에 계엄군을 투입하고 계엄사령부 포고령에 정치 활동 금지, 언론과 출판 통제 등이 들어간 것도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제헌 헌법부터 계엄을 명시한 것은 휴전 중인 대한민국에서 폭동 등 비상사태에 최후의 수단으로 군이 개입해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이유였다. 상식적으로 계엄은 체제 전복을 노리는 적군이나 간첩 등이 폭동을 일으키고 무장한 채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국가기관 점령을 시도할 때나 선포돼야 한다. 하지만 이번 비상계엄을 보면 이른바 ‘친위 쿠데타’에 악용되거나 그 방식 또한 과도하게 기본권을 제한하는 등 인권 침해 우려의 소지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1949년 제정된 계엄법은 11차례 개정됐다. 하지만 대부분 정부조직법 개편에 따라 기관명이나 한자 병기 등 표현을 고친 것뿐이고 2006년 재판 손실보상 관련 조항이 일부 바뀌었을 뿐이다. 계엄법의 틀과 내용이 75년 전인 1949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계엄 선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없었는지다. 2017년 2월 국군기무사령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이후를 대비해 ‘계엄 문건’을 만든 사실이 이듬해 확인되면서 수사가 진행됐지만 그뿐이었다. 올해 9월 더불어민주당에서 계엄령 의혹을 제기할 때도 법 개정 논의가 있었어야 했다. 두 차례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이제라도 계엄 선포 요건을 명확하게 하고 불필요한 기본권 제한 조항은 최소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계엄 사태 이후 야당 의원들은 25일 현재 무려 50개의 계엄법 개정안을 저마다 발의했다. 포괄적이고 모호한 ‘국가비상사태’의 개념을 구체화하거나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시 계엄 효력을 즉각 중지하는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여야가 내란·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 등을 둘러싸고 대립하면서 정국이 냉랭해지고 있지만 여야가 우선 처리할 과제는 계엄법 개정이 아닐까. 당장 박근혜 정부 계엄 문건처럼 탄핵심판이 끝난 뒤를 염두에 두고 누군가 제2의 계엄을 검토하는 것 아닌지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국회가 계엄 즉각 해지로 오래간만에 박수받았던 걸 잊지 말길 바란다.



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