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계엄령 선포 및 해제 이후 사흘간 약 120통의 항의 전화가 학교로 왔다. ‘학교 이름을 계엄고로 바꿔라’ ‘학교를 폭파해라’ 등의 내용이었다. 스쿨버스 운행을 방해하는 시민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모교인 충암고 이윤찬 교장이 이달 9일 국회 교육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해 한 말이다. 충암고 출신 선후배로 구성된 이른바 ‘충암파’는 더불어민주당 등으로부터 이번 계엄령 사태의 핵심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상태다. 윤 대통령은 충암고 8회 졸업생이고, 대통령에게 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고교 1년 선배다. 비상계엄 논의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고교 4년 후배다. 계엄사령부 출범 시 수사 업무를 맡게 되는 국군방첩사령부 여인형 전 사령관과 대북 특수정보를 다루는 국군 777사령부 박종선 사령관이 충암고 출신이란 점 역시 해당 의혹에 힘을 싣고 있다. 문제는 그 불똥이 충암고 학생 및 교직원들에게까지 튀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충암고 교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조롱당하고, 위협당했다. 충암고 통학버스 기사에게 시비를 거는 시민도 있었다. 충암고 교장의 말처럼 학교 교무실에는 시민들의 빗발치는 항의 전화로 교사들의 일상적인 업무 처리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피해를 입은 건 충암고뿐만이 아니다. 같은 충암학원 소속으로 한 부지에 모여 있는 충암유치원, 충암초, 충암중 학생과 원생도 피해를 입고 있다. 계엄령 선포 후 충암초 스쿨버스를 향해서도 손가락질하거나 야유를 보내는 시민들이 나타났고 결국 경찰이 자제를 당부하는 상황이 됐다. 경찰 순찰차는 계엄령 선포 이후 며칠 동안 스쿨버스가 학교 정문을 통과하는 것까지 확인을 했다고 한다. ‘충암’이란 이름의 교육기관을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이 과연 정상적일까.
대한민국에서 45년 만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걸 두고선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계엄 철폐’와 ‘대통령 탄핵’을 외쳤고 종교계에서도 “국민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역사의 후퇴”(대한불교조계종) 등의 입장문이 나왔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역사의 후퇴뿐만이 아니다. K컬처가 세계를 휘어잡고 한국 소설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시대에 윤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비상계엄령 선포는 한국인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줬다.
비상계엄령 사태에 분노한 민심은 이해하지만 충암고를 향한 시민들의 삐뚤어진 분풀이 역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묻지 마 마녀사냥’의 일종에 불과하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을 고교 선배로 뒀을 뿐, 충암고 학생들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