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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회한[이준식의 한시 한 수]〈296〉

입력 | 2024-12-26 23:00:00


서역인이 부는 옥피리 소리, 그중 절반은 중원 땅 가락일세.
시월 남녘 산속의 새벽, 경정산(敬亭山)에 흐르는 ‘매화락’ 가락.
근심스레 ‘출새곡(出塞曲)’ 듣노라니, 쫓겨난 신하의 갓끈에는 눈물이 가득.
장안으로 가는 길 되돌아보며, 부질없이 품어보는 임금 향한 마음.
(胡人吹玉笛, 一半是秦聲. 十月吳山曉, 梅花落敬亭.
愁聞出塞曲, 淚滿逐臣纓. 却望長安道, 空懷戀主情.)

―‘서역인의 피리 연주를 보며(관호인취적·觀胡人吹笛)’ 이백(李白·701∼762)


장안, 한때 이백이 황제를 모시던 곳. 그곳을 떠나 십여 년을 방황하던 시인은 ‘중원 땅 가락’이 섞인 피리 소리만 듣고도 마음이 짠해진다. 한림공봉(翰林供奉) 시절, 황제를 측근에서 보필한다는 자부심에다 세도가나 명사들과 어울리며 득의양양한 세월을 보냈던 그. 시인은 ‘중상모략이 현군의 마음을 미혹시키고, 아첨배가 계략을 꾸며 은총이 소원해졌다’(‘고산인·高山人에게 답하다’)라고 억울해했지만, 자유분방한 성격에 걸핏하면 주사까지 부리는 바람에 진작 주변 사람의 눈 밖에 났던 터. 양귀비마저 그를 냉대하자 현종은 마침내 그를 내보낸다. 이리 곡진한 사연이 얽힌 장안이니 그곳 가락에 눈물을 흘릴 만하겠다.

노장사상과 시주(詩酒)에 탐닉했던 이백, 관직과는 통 어울릴 성싶지 않지만 공명심은 각별했다. 그는 자신을 장량(張良), 한신(韓信), 제갈량(諸葛亮) 등에 비견하곤 했는데, 모두 국가 경영에 큰 공적을 남긴 풍운아들이다. 부질없다면서도 ‘임금 향한 마음’을 품은 채 ‘장안으로 가는 길 되돌아보는’ 까닭을 이해할 것 같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