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은 언제나 수평선을 바라보며 산다. 수평선 너머는 한때 두려움과 동경이었지만 이제는 충전과 치유, 그리고 회복이다. 제주=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제주도 한 달 살기 바람이 몇 년째 가실 줄 모른다. 살아 본 사람들의 경험을 담은 책과 유튜브 프로그램은 수십 권, 수십 건이다. 바다 건너 섬 생활 이야기가 이웃 마을 ‘맘 카페’ 댓글 보듯 가깝다. 제주가 익숙해진 것 같다. 그걸로 충분한 걸까.
누구 말대로 제주는 언제나 ‘낯선 이상향’으로 남았으면 한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기. 처음인 듯한 경관에 푹 빠지기. 아무 생각 없이 게으름 피우기. 소진된 ‘항마력(降魔力·생활 속 부끄러움이나 역겨움을 견디는 힘)’ 충전하기. 조금 치유된 나를 만나기. 그런 곳 말이다.
성이시돌목장을 거니는 경주마들.
물론 영등할망 올 때가 아니어도 제주 바람은 억세다. 누구는 “영문도 모른 채 바람이 분다. 방향도 수백 번 바뀐다”고 했다. ‘한라산 산신(山神)은 육지에서처럼 범(虎)이 아니라 바람과 돌의 상징인 듯하다’는 이즈미의 해석은 맞을 것이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갈는지 모르는 바람 속에서 말들이 330만 ㎡(약 100만 평) 초지(草地)를 거닌다. 겅중겅중 달린다. 고려 삼별초가 패망한 1273년 이후 몽골은 말 160필을 가져다 놓고 제주도를 목마장(牧馬場)으로 삼았다. 20세기 들어서까지 마을 공동으로 말을 방목했지만 지금은 대개 경주마를 기른다.
이 목장 말도 26세 먹은 종마(種馬) ‘액톤 파크’가 뿌린 경주용 서러브레드(thoroughbred)다. 경주용 말은 2∼3세에 경주를 시작한다. 전국 경마장에서 달리는 말의 80%가 제주산이다. 선수 경력은 길어야 5년. 보통 7세에 은퇴한다.
성이시돌목장은 1953년 아일랜드에서 온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1928∼2018) 신부가 중산간(해발 200∼500m 지역) 땅을 개발한 것이다. 이시돌(Isidore·1110∼1170)은 스페인 농노 출신 가톨릭 사제로 농부의 수호성인이다. ‘제주 기업 목축의 본보기’인 이곳에는 당연히 소도 있고 양도 있다. 목장 쉼터에서는 아이스크림을 팔고 농약 안 친 풀을 먹고 자란 젖소가 우유를 만든다. 유기농 우유가 일반 우유보다 영양성분이 더 많지는 않단다. 브런치 카페에서는 제주 메밀로 만든 갈레트(galette)를 판다. 프랑스에서는 흔히 베이컨을 넣는데 여기서는 제주 해산물로도 만든다.
● ‘계절은 이렇게 내리고, 그렇게 머문다’
이즈미의 ‘제주도’나 1983년 ‘뿌리깊은 나무’에서 출간한 ‘한국의 발견―제주도’에서 차(茶)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연간 차 생산량 아시아 1위다. 그만큼 차 재배 농민이 많고 차 수준도 높다. 제주 토종 꽃차도 40여 종이다.
서귀포 ‘회수다옥’의 맡김차림.
이곳에서는 ‘맡김차림’을 음미해 봐야 한다. 주인 서경애 씨(55)는 보이차 우롱차 말차 같은 수입차 위주의 이른바 ‘티마카세(티·tea+오마카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제주산 차 5종과 제주 밭작물로 만든 다식으로 맡김차림을 만들었다.
회수다옥의 다식 ‘유자단지’.
손님 앞에서 차를 직접 우려내는 팽주(烹主)에게서 그 차 이야기를 들으며 맛과 향을 들이켜다 보면 ‘계절은 이렇게 내린다’는 노랫말이 와닿는다. 계절이 차를 통해 내 몸에 내려와 한동안 머문다.
‘씬오브제주’의 천연염색 에코백.
● ‘제주 사람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산다’
‘한국의 발견―제주도’에 이런 문장이 있다. ‘참새만큼 흔한 텃새인 동박새는 늦겨울 붉게 핀 동백꽃을 찾아 한라산 골짜기를 떠나 마을에 내려오는데, 동박새가 “호오개교옥” 하고 울 적마다 동백꽃이 한 송이씩 피어나고….’
동백마을에서 주운 동백 씨앗.
동백마을에서 갓 짜낸 동백기름.
해비치호텔&리조트 제주 다크룸.
해비치호텔&리조트 제주의 밤.
제주=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