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린 장갑석 한국 사격 대표팀 총감독이 총을 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나 오늘부터 술 끊었다. 올림픽이 끝나는 날 멋진 성적 내고 다시 먹겠다.”
1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장갑석 한국 사격대표팀 총감독(64)의 갑작스런 금주(禁酒) 선언에 많이 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장 감독은 사격계를 넘어 한국 스포츠계의 대표적인 ‘애주가’로 유명하다. “1년에 닷새 빼고 360일은 술을 마신다” “점심, 저녁 등 하루 두 번 술을 먹는 날도 적지 않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했으니 주변 사람들이 긴가민가했던 것도 당연하다.
장 감독은 자신이 뱉은 말을 지켰다. 진천선수촌에서는 물론이고 휴가를 받아 집에 돌아왔을 때도 금주를 실천했다. 가족 모임에서는 술 대신 물을 마셨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단 지도자들은 파리 올림픽으로 출발하기 전 선수촌장 주최 회식을 했는데 여기서도 그는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회식 자리에는 무알콜 맥주를 가져갔다. 장 감독은 “작년 12월 금주 선언 후 파리 올림픽이 끝난 8월 중순까지 약 8개월 동안 금주했다”며 “예전 딸의 결혼을 앞두고 얼굴 관리를 위해 6개월간 술을 마시지 않은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내 인생 최장기간 금주 기록인 것 같다”며 웃었다.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의 금메달 순간 장갑석 감독이 환호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가 이끈 한국 사격대표팀은 파리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반효진, 오예진, 양지인 등이 금메달을 따냈고, 박하준-금지현, 조영재, 김예지 등은 은메달을 획득하며 금 3, 은메달 3개를 획득했다. 반효진은 대한민국 여름 올림픽 최연소이자 100번째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고, ‘엄마 사수’ 김예지는 특유의 시크한 표정과 아우라를 드러내며 ‘월드 스타’에 등극했다.
장 감독은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는데 틈날 때마다 휴대전화를 보더라. 휴대전화를 오래 볼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고 시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 않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며 “연습을 실전처럼 하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실전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는 선수는 없다. 선수들이 내 말을 따르게하기 위해서 나부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사격 대표팀에 좋은 영향을 끼친 건 하나 더 있다. 장 감독의 ‘보물 1호’로 국제대회마다 가지고 다니는 황금색 넥타이다.
한국 사격 대표팀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역대 아시안게임 단일 종목 최다인 13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당시 대한사격연맹 경기력향상위원장을 맡고 있던 그는 모든 종목을 관전할 때 바로 그 넥타이를 했다. 그는 “당시 연맹 회장이던 김정 연맹 회장님이 어느 날 회색 넥타이를 하고 나온 날이 있다. ‘당장 넥타이 색깔을 바꾸고 나오시라’고 말씀드렸더니 정말로 노란색 넥타이로 바꿔 메고 오셨다. 그런 기운을 받아서인지 그 대회에서 정말 많은 금메달이 나왔다”고 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도 그는 행운의 넥타이를 가져갔다. 경기장을 갈 때 백 팩에 곱게 넣어가서, 경기를 볼 때마다 그 넥타이 위해 손을 얹은 채 우리 선수들을 응원했다. 그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도 그 넥타이를 가져가곤 했다. 4차례 출전한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한국 팀 성적이 항상 좋았다”며 웃었다.
장갑석 감독이 파리 올림픽 여자 25m 권총에서 결선 진출에 실패한 김예지를 위로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렇다고 그가 전적으로 기도와 행운에만 의지한 것은 아니다. 평소 ‘호랑이 선생님’으로 통하는 그가 대표팀 총 사령탑에 임명됐을 때 어린 선수들과의 소통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지적보다 격려, 비난보다는 칭찬으로 선수들을 대했다. 그가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네가 최고야”였고. 가장 많이 했던 동작은 ‘엄지 척’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사실을 절감한 선수들은 무럭무럭 성장했다. 반효진이 노트북 상단에 붙여 화제가 됐던 ‘어차피 이 세계 짱은 나다’라는 문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장 감독은 “기술적인 부분은 모두 코치들이 알아서 했다. 내가 한 것이라곤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준 것밖에 없다”며 “그런데 바로 그 칭찬의 힘이 무섭더라. 자신감으로 무장한 반효진과 오예진은 누구랑 붙어도 질 것 같지 않았다. 평소 경기 전 손을 벌벌 떨곤 하던 양지인도 사선에 서더니 철벽같은 선수가 됐다”고 했다.
1980년 제4회 아시아선수권 금메달을 딴 장갑석 감독이 대전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메달이 귀했던 당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갑석 감독 제공.
파리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뒤 그는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며 미뤘던 음주를 만끽하고 있다. 연말을 맞아 주5일은 자리를 갖는다.
그런데 그렇게 자주 술을 마셔도 건강은 괜찮은 걸까. 매일 술을 마시는 건 중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에게는 술에 대한 확고한 원칙이 있다. 취해서 비틀거릴 정도로는 절대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그는 일 년에 두 차례 정도 한 달 금주를 실천한다. 그는 “전날 술을 마셨는데 아침에 숙취가 가시지 않을 때가 있다. 몸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날부터 몸이 회복할 때까지 한달 가량 아예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또 “애주가와 중독자의 차이는 참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다. 개인적으로는 술을 안 마시겠다고 마음먹으면 안 먹는 게 어렵지 않다. 요즘도 1년에 두 번씩은 몸이 완전히 회복할 시간을 준다”고 했다.
예전에 비해 먹는 양도 줄였다. 섞어 마시지 않고 가능한 한 한 종류의 술만 마시는 편이다. 그는 “예전부터 간에 좋다고 하는 나무를 다려서 먹곤 했다. 요즘에는 각종 채소를 넣어서 만든 야채수프를 끓여 먹는다. 개인적으로는 꽤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장갑석 감독의 모습. 장갑석 감독 제공
운동도 열심히 한다. 그가 가장 많이 하는 운동은 골프다. 대개 사람들처럼 필드에 나가서 걷는 게 아니라 연습장에서 땀을 흘릴 정도로 스윙을 많이 한다.
장 감독은 “일주일에 3번가량 연습장에 가서 1시간~1시간 반가량 운동을 한다. 일요일처럼 시간이 넉넉할 때는 3, 4시간 연습장에 머물기도 한다”며 “골프 스윙이 운동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제대로 하면 몸통과 팔 근육을 많이 쓴다. 골프 연습을 열심히 한 덕분에 뱃살이 쏙 들어갔다”고 했다.
그는 걷는 것도 좋아한다. 어지간히 가까운 거리는 차를 이용하기보다는 걸어서 간다. 필드를 나가서도 카트를 타지 않고 걷는 쪽을 선호한다.
그렇게 골프에 진심인 덕분에 그는 핸디가 5인 싱글 플레이어다. 라이프 베스트는 1오버파인 73타다. 그는 “골프와 사격은 비슷한 점이 많다. 사격이 한 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골프도 스윙에 조그마한 틈이 있으면 공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어드레스부터 팔로우까지 매 순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군 대령 출신으로 충남사격연맹 창설을 이끌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중학교 때부터 사격 선수의 꿈을 키운 그는 50년 넘게 한국 사격 역사의 산증인으로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는 1979년 세계공기총대회 10m 공기권총 금메달리스트이자 1980년 제4회 아시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선수 생활을 오래 이어가진 못한 채 1984년부터 모교인 한국체대에서 조교를 맡았고, 1990년에 교수로 임용됐다. 현장 경험에 이론을 겸비한 그는 이후 대한사격연맹에서 실무부회장과 경기력향상위원장, 기술위원장 등을 두루 맡았다.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 될지도 모를 올해 파리 올림픽에서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가족들은 파리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두고 돌아온 장갑석 감독을 따뜻하게 맞았다. 장갑석 감독 제공
내년 2월 정년이 되는 그는 40년간 정들었던 학교를 떠난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인생은 65세부터 다시 시작이다.
파리 올림픽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둔 그는 향후 2년 더 한국 대표팀 총감독 직을 수행한다. 2026년 나고야 아시안게임까지가 임기다.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임기가 끝나면 국제심판 자격으로 국내외 사격장을 다닐 수 있다.
장 감독은 “파리 올림픽을 통해 발굴한 유망주들이 잘 커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게 단기적인 목표”라면서 “이후에도 사격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면서 관련된 봉사를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