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의 기원 명절 문화된 북방 부여의 문화… 유목민 윷 대신 뼈 던지며 놀이 격자 게임판과 다른 원형 윷판… 하늘 형상화한 그림에서 비롯돼 길, 담벼락서 발견되는 놀이말… 둘러앉아 ‘고누놀이’ 발해의 흔적
단원 김홍도의 단원풍속화첩. 나무를 한 짐씩 해서 산을 내려온 후 잠시 땀을 식히며 윷놀이에 빠진 서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윷놀이는 놀이판을 깔고 말을 움직여 다양한 지혜를 겨루는 보드게임의 일종이다. 세계 곳곳에는 각자의 놀이가 있다. 서양에는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개발돼 아랍을 통해 유입된 체스가 있고, 한나라 이후에 널리 유행한 장기와 바둑은 동아시아를 대표한다. 윷놀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보드게임이지만 정작 그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는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 통일된 견해가 없다. 그 이름도 ‘척사’ ‘도개걸모’ ‘저포’ 등으로 다양하고 ‘윷’이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한 견해도 학자마다 다르다. 대부분의 민속놀이가 그렇듯 오랜 기간 민중들 사이에 알음알음으로 전해지면서 다양한 변종이 생긴 탓이다.
다만 그 기원은 부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부여에서는 동물의 이름을 따서 마가·우가·구가·저가라 부르는 관리들을 사방에 두는 ‘사출도’를 운영했는데, 양을 뜻하는 ‘걸’을 제외하면 윷놀이에 등장하는 4마리의 동물 이름과 똑같다. (다만 걸은 부여의 사출도에 없다. 이에 따라 거세한 양을 뜻하는 ‘갈(羯)’로 보거나 고을을 뜻하는 ‘골’이라는 고대 언어에 그 흔적을 찾기도 한다.)
2000년 전 부여 북쪽에 인접한 흉노의 보드게임판이 몽골국립박물관에 전시된 모습. 강인욱 교수 제공
2000년 전 몽골 고분에서 발견된 뼈로 점치는 도구인 ‘샤가이’. 윷놀이 말의 기원인 셈이다. 강인욱 교수 제공
삼국시대에 보드게임을 특히 좋아하던 나라는 백제로, 중국의 역사기록서 ‘주서’ 백제전에는 윷놀이와 함께 투호, 바둑, 장기같은 놀이를 즐겼다고 돼 있다. 백제의 왕과 귀족은 부여계로 북방의 놀이가 남한으로 확산되는 데에 일조했으며, 그들의 놀이와 점복문화는 삼국, 나아가 고려·조선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멀게만 생각했던 북방 부여의 문화는 현재의 명절 문화로 이어졌다.
윷놀이의 기원을 부여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바로 윷판의 독특한 형태 때문이다. 전 세계 곳곳에 윷놀이같은 보드게임이 있지만 대부분 장기나 바둑과 같은 격자판이다. 하지만 윷판은 마치 하늘의 별자리나 태양을 연상시키는 원형으로 이어지는 다른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윷판의 형태는 경북 포항 칠포리나 경기 이천 지석리 등 한반도에 있는 고인돌 위에서 많이 발견된다. 고인돌은 제사를 위한 기념물이나 그 위에 각지에서 가져온 제물그릇을 올려 놓는 제단으로 쓰였다. 각 그릇이 놓인 위치는 큰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김일권, 송화섭 등 천문과 암각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형태를 천체의 운행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경주 황룡사의 주춧돌에 새겨진 윷판 형상. 강인욱 교수 제공
발해가 멸망하고 나서 요나라는 발해 유민들을 몽골 초원 한복판으로 이주시켰다. 발해 유민이 남긴 대표적인 유적인 친 톨고이에도 발해의 윷놀이 말과 윷판이 출토됐다. 1100년 전 망국의 한을 품고 사방으로 흩어진 발해의 유민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놀이말이 그 흔적을 대신하고 있다.
고누는 고려시대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하늘을 상징하는 전통 별자리판에 고누 놀이가 결합된 윷놀이는 조선시대에 본격 등장한다. 조선 전기 생육신으로 유명한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소설 ‘만복사저포기’에서 윷놀이는 귀신을 부르는 놀이로 묘사된다. ‘저포’는 원래 중국 고대의 놀이지만 한국에서는 윷놀이의 의미로 사용됐다. 소설은 남원에 사는 양생이라는 총각이 부처님과 겨룬 윷놀이에서 이겨 귀신이 된 여인을 만난다는 내용이다. 당시 윷놀이가 점 치는 도구로도 사용됐다는 뜻이다.
이 같은 윷놀이는 조선 후기에 들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도 등장하며 18세기에는 윷놀이 전문 지침서인 ‘사희경’이라는 책이 나올 정도였다. 윷놀이의 인기 비결은 다른 보드게임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여러 사람들이 큰 준비물 없이 간단하게 놀 수 있다는 점이다. 윷 말은 지천에 깔린 사금파리를 쓰면 됐고 윷가락은 구하기 어려운 동물의 뼈 대신 구하기 쉬운 싸리나무 가지를 이용했다. 윷판도 따로 필요없이 종이에 그리거나, 그것도 없으면 그냥 땅에 그으면 되니 장소의 제약도 없다. 규칙도 간단해 누구나 손쉽게 배울 수 있다. 장기나 체스같이 복잡한 수를 쓰는 대신 윷을 던져 나오는 경우의 수가 승패를 좌우하니 많이 경기할수록 결국 서로 승부는 비슷하게 수렴된다. 상대방을 누르기 위한 도박이나 실력 싸움 대신 남녀노소 불문하고 함께 웃고 즐기는 가족 놀이로 정착됐다. 윷을 만들어서 농사를 하는 공동체사회인 조선에 적합한 놀이가 된 것이다.
명절 때가 돼 가족들이 어렵게 만나도 서로 얼굴을 보고 말하기보다는 어색함에 스마트폰에 머리를 파묻기 일쑤다. 게다가 지금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대립되고 서로 고립됐다. 갑자기 벼랑 끝에 있는 듯 위태로워진 한국의 상황이 너무나 낮설고 두렵기까지 한다. 빨리 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공중으로 날리는 윷과 함께 시름을 날려버리는 새해가 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