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콘크리트 둔덕’ 해명 오락가락 ‘활주로 밖 불시착 경우까지 고려’… 안전구역 거리도 권고사항 못미쳐 공항공사, 2020년 시설 설계 공고… “부서지기 쉽게 만들라” 지침 내려
무너진 로컬라이저 제주항공 7C2216편 추락 사고 사흘째인 3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항공기가 충돌한 콘크리트 둔덕 위에 로컬라이저 안테나가 파손돼 있다. 무안=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제주항공 여객기가 충돌한 ‘콘크리트 둔덕’은 비행기 착륙을 돕는 로컬라이저 안테나(방위각 시설)를 지면에 평평하게 세우기 위해 설치됐다.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규정대로 ‘안전구역’을 지정했다면 사고 지점에는 애초에 콘크리트 둔덕을 세울 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 국토부 책임론이 확산하고 있다.
● 국토부 규정 어긴 국토부
31일 국토부는 보도 참고 자료를 통해 “로컬라이저는 규정에 맞게 설치됐다”고 밝혔다. 전날 콘크리트 둔덕의 ‘공항 부지에 있는 모든 장비와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는 규정 위반 지적을 연이어 반박한 것이다.
하지만 안전구역 관련 규정에는 국토부 해명과 배치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가 고시한 ‘공항·비행장시설 이착륙장 설치기준’에 따르면 정밀 접근 활주로라면 로컬라이저가 설치되는 지점까지 안전구역을 연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항공기가 활주로를 벗어나 불시착하면 가장 먼저 로컬라이저와 충돌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규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토부가 처음부터 콘크리트 둔덕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정황도 있다. 2020년 3월 3일 한국공항공사의 ‘무안공항 등 계기착륙시설 개량사업 실시설계 용역’ 공고 내용에 따르면 ‘프랜지빌리티 확보 방안에 대한 검토’가 포함돼 있다. “장비 안테나 및 철탑, 기초대 등 설계 시 프랜지빌리티를 고려하여 설계하여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공항공사가 로컬라이저를 부러지기 쉽게 만들라고 지침을 내린 것이다. 한국공항공사의 이 같은 지침에도 불구하고 왜 콘크리트 둔덕이 만들어졌는지는 앞으로 규명해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안영태 극동대 항공학과 교수 역시 “(콘크리트 둔덕 설치는) 규정상 맞더라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김인규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은 “둔덕이 없었다면 사고 규모가 더 줄었을 것”이라며 “정부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관련 규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규정보다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보헌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비행기 속도가 빨라지면서 안전구역 기준은 300m 이상 기준이 권고되고 있다”며 “현재 법적으로 어긋나는 부분은 없을지라도 안전을 위한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안전구역 길이는 활주로 끝에서 300m 이상으로 만들라고 권고하고 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 권고 역시 안전구역은 활주로 끝에서 305m 이상으로 돼 있다. 하지만 무안공항의 안전구역은 불과 활주로 끝에서 259m에 불과했다. 무안공항 외에도 포항·경주 공항(152m), 사천공항(182m), 울산공항(260m)도 글로벌 안전권고 기준을 밑돌았다.
● 경찰, 위법성 수사 착수
무안 제주항공 참사와 관련해 사고의 한 원인으로 거론되는 공항 둔덕 시설물, 조류 퇴치 문제점 등 각종 논란에 대한 경찰 수사도 본격화되고 있다.
경찰은 참사와 관련된 공항 둔덕에 설치된 방위각 표시시설(로컬라이저) 설치, 조류 퇴치 문제점 등을 살펴볼 전망이다. 경찰은 사고 항공기 기체 결함 여부, 공항 운영 문제점 등 각종 의문을 전반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무안공항공사 관계자 등을 중대재해처벌법(중대시민재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조사할 것으로 분석된다. 경찰 관계자는 “참사와 관련된 각종 의혹 등을 전반적으로 꼼꼼하게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