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강경읍 ‘만나식당’의 젓갈백반정식. 김도언 소설가 제공
충남 강경에 왔다. 목적은 아주 강경하고 명백한 단 한 가지. 젓갈백반정식을 맛보기 위해서다. 한국 사람들은 입맛이 없을 때 흰밥을 물에 말아 짭조름한 젓갈을 올려 먹곤 한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딱히 영양소랄 것도 없을 그 단출한 조합이 잃었던 입맛을 돌아오게 하고 원기를 불어넣어 준다.
김도언 소설가
한국에서 강경은 젓갈 왕국의 도읍지다. 전국 유통량의 60%가량을 차지하고 해마다 10월에는 대대적인 젓갈축제까지 열린다. 강경이 젓갈의 주산지가 된 것은 금강 중류와 하류 중간쯤에 위치한 포구로서, 인근 군산 바다에서 나는 풍부한 해산물을 내륙으로 들이는 수운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전성기에는 평양, 대구와 전국 3대 시장이라는 영광과 함께 ‘강경 바닥에선 개들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풍설이 떠돌기도 했을 정도다.
사장님이 친절하게 젓갈 하나하나의 이름을 알려주신다. 새우젓, 명란젓, 밴댕이젓, 낙지젓, 오징어젓 같은 제법 익숙한 젓갈은 물론이고 갈치속젓, 창난젓, 가리비젓, 청어알젓, 꼴뚜기젓, 아가미젓, 씨앗젓, 토하(土蝦·민물새우)젓, 전어젓, 멍게젓에 이르러서는 결국 머릿속 회로가 멈춰 서버렸다. 거기에 김치, 씀바귀나물, 아욱과 늙은호박이 들어간 된장국, 고등어조림이 곁들어진다. 밥 빼고 물경 21찬인데 1인분 1만2000원. 젓갈들은 전부 알근달근 짜지도 너무 달지도 않고 딱 백반의 찬으로 제격이다.
밥 한 술에 젓갈 한 젓가락 올려서 먹다 보니, 밥 한 그릇이 정말 눈앞에서 ‘순삭’된다. 사장님께 여쭸다. 이 많은 젓갈을 직접 담갔냐고. 그랬더니 그런 질문은 수백 번도 더 받아봤다는 듯 슬며시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 식당 젓갈은 전부 강경서 담근 걸 쓰죠. 그런데 제가 직접 양념을 만들어서 버무려요.”
사장님 말인즉슨 식당에서 직접 젓갈을 담그지는 않지만, 젓갈 맛을 내는 비법은 젓갈마다 가장 적실한 양념을 배합해 젓갈 고유의 맛과 향을 배가시키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아하, 또 하나를 배운다. 아무리 시간과 자연이 절로 만들어낸 산물일지라도 거기에 인간의 지혜와 정성이 섞일 때 명품이 나온다는 것을. 그게 바로 문화의 속성이라는 것도. 자연에서 문화로의 진화, 젓갈백반만큼 이걸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물도 없을 듯하다.
김도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