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종종 ‘기술 클러스터(tech clusters)’에 창업한다. 대기업이 자리 잡으면서 형성된 숙련 기술, 영업, 인력 시장의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런 접근성은 스타트업이 성장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그러나 동시에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높은 임금을 제시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높은 인건비는 실험이나 마케팅 등 중요 활동에 투자할 자본을 줄이고 스타트업이 성장 단계에 도달하는 데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보스턴대와 이탈리아 보코니대 공동연구진이 2010∼2020년 올라온 채용공고 1억8000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지역 대기업의 채용 패턴이 스타트업 성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먼저 대기업 채용이 늘어날 때 같은 지역의 스타트업은 핵심 직무에 대해 최대 10% 높은 급여를 제시해야 했다. 이로 인해 회사의 예상 성장률은 36%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잠식 효과는 과학, 기술, 공학 및 수학(STEM)과 경영, 영업 등 스타트업에 필수적인 핵심 직무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다만 대기업과 비즈니스 모델이 유사할수록 스타트업 성장에 갖는 잠식 효과는 약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과 유사한 스타트업은 성장률이 20% 감소하는 데 그친 반면에 유사하지 않은 스타트업은 최대 60%까지 감소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스타트업은 이번 연구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첫째, 필요한 인재를 신중히 분석해야 한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전을 고려하는 스타트업이라면 대기업의 진출 여부를 포함한 종합적인 환경 분석이 필수적이다. 이는 동일 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의 대기업도 포함된다. 사업 방향의 전환을 고민 중이라면 기존 대기업의 기술과 상호 보완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대기업과 비즈니스 모델이 유사한 스타트업의 경우 성장에 있어서 받는 부정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셋째, 지역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주변 기업 환경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정책 방향성도 중요하다. 일부 지역은 대기업과 창업 커뮤니티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 특별한 정책을 시행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 유치를 위해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대기업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 외에 노동시장 혼잡으로 나타날 부정적 효과와의 균형을 고려하는 지역도 있다. 대기업 유치 전략이 특정 산업에 집중됐거나 퇴사 후 일정 기간 동안 동종 업체로의 이직을 제한하는 경쟁금지 계약을 시행하지 않는 지역이라면 스타트업에 더욱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연구 결과는 대기업 인근에 위치할 경우 대기업의 채용 패턴이 스타트업의 확장 능력을 제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스타트업이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해야 한다면 한정된 재정 자원이 소진돼 다른 분야의 성장에 투자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연구 결과를 지역 분석에 반영하고 인재 확보를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면 스타트업은 치열한 인재 전쟁 속에서도 성장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국어판 디지털 아티클 ‘대기업 옆에 찰싹, 스타트업에 득일까 독일까?’를 요약한 것입니다.
짐 베센 미국 보스턴대 기술 및 정책 연구 이니셔티브 전무이사
펠릭스 포게 이탈리아 보코니대 경영 및 기술학과 조교수
로냐 뢰트거 보스턴대 기술 및 정책 연구 이니셔티브 펠로
정리=최호진 기자 ho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