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두려워한 유대인 가정 부모들… 자녀라도 살리려 해외에 구인 광고 당시 英으로 간 저자의 아버지 등… 가족 품 떠난 아이들 이야기 담아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줄리안 보저 지음·김재성 옮김/420쪽·2만3000원·뮤진트리
홀로코스트를 피해 유대인 가정의 자녀를 해외에서 맡아줄 사람을 찾는 1938년 8월 3일 영국 일간지 ‘맨체스터 가디언’ 광고. 테두리 안이 저자의 아버지인 로베르트 보저를 맡아줄 사람을 찾는 광고다. 뮤진트리 제공
1938년 8월 3일 영국 일간 ‘맨체스터 가디언’엔 이런 내용의 짤막한 ‘과외’ 구인 광고가 실렸다. 광고엔 구체적 급여나 시간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 대신 “오스트리아 빈의 좋은 가정에서 길러졌다”는 짧은 소개와 함께 광고주 집으로 추정되는 주소지와 광고주 이름만 적혀 있었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자신의 아이를 바다 건너 영국에 있는 낯선 이에게 덜컥 맡기겠다니. 부모가 너무 경솔한 건 아닐까. 하지만 알고 보면 이는 무책임함이라기보단 당시의 긴박함을 드러내는 광고였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병합을 선언하고 빈에 거주 중이던 유대인들을 색출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유대인 변호사 가정에서 자라 영국으로 보내진 슈바르츠 형제의 어린 시절. 뮤진트리 제공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벌어졌던 기막힌 이야기들은 이처럼 살아남은 아이들의 후손에게로 전해져 내려왔다. 신간의 저자도 그 후손 중 한 명. 당시 광고 속 11세짜리 아이 ‘로베르트 보저’가 저자의 아버지다.
1966년 중년이 된 저자의 아버지 로베르트 보저. 뮤진트리 제공
공교롭게도 아버지를 구한 광고가 실린 맨체스터 가디언은 바로 저자가 몸담고 있는 가디언의 전신이다. 저자는 가디언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한 작은 광고와 기사, 사료 등을 토대로 자신의 뿌리를 찾아간다. 알려지지 않았던 홀로코스트의 이면도 숨 가쁘게 따라간다.
책 전반부는 저자의 아버지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후반부에선 그 밖에도 당시 빈에서 영국 등 세계 곳곳으로 넘어간 아이 7명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부모의 품을 떠난 아이들의 상흔은 후대에도 이어져 현재 영국과 이스라엘, 프랑스, 미국, 중국 등에 남아 있다. 10대 초반의 소년 소녀들이 먼 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른인 척하고, 생존 기술을 배우며, 처절하게 적응해야 했다. 국가적 폭력이 얼마나 무수한 이들의 우주를 파괴했는지 느끼게 된다.
저자는 취재 과정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후손인 한 교수와 나눈 서신 가운데 한 구절을 짤막하게 책에 담았다.
“가해자가 되지도 말고 피해자가 되지도 말되, 절대, 결단코 방관자가 되지도 말라.”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