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새로운 해가 밝았다. 내게 주어진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퇴직하고 나서 어려워진 것이 있다면 바로 새해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직장인 시절에는 업무에 최선을 다하자는 의지만 있어도 충분했는데, 퇴직 후에는 참으로 막막한 일이 되었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첫째, 막연한 목표보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나는 퇴직 후에 ‘강의를 하겠다’라는 목표를 세웠다. 저명한 강연자들이 큰 무대에 올라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는 광경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회사에서 발표 잘한다는 칭찬도 곧잘 들었던 터라 자신이 있었다. 호기롭게 퇴직한 이듬해에 ‘명강사’라는 새해 목표를 다졌고 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이루리라고 결심하였다. 하지만 속상하게도 아직까지 그 꿈은 미완성이다.
둘째, 거창한 결과가 아닌 작은 성과를 지향해야 한다. 유명 강사의 길이 멀게 느껴지자 보다 익숙한 일을 해야겠다고 방향을 수정했다. 그래서 찾은 직업이 사업가였다. 나 스스로 강사가 되지 못하면 좋은 강사를 채용해 교육회사를 운영하면 되겠다 싶었다. 관리 쪽은 오래 해왔던 영역이라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즉시 ‘5년 뒤 업계 3위권 진입’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세우고 전력을 다했다. 그렇지만 이 역시 결말이 좋지 못했다. 현재 나는 성공한 사업가이기는커녕 사업 실패로 떠안은 손실을 메꾸느라 진땀만 흘리고 있다.
이번에는 뭔가 대단해 보이는 결과를 원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회사를 키우려면 다각화가 최선이라고 판단해 문어발식으로 분야를 확장한 게 패착이었다. 영업 개시와 동시에 강사 양성뿐 아니라 커리큘럼 개발, 관련 상품 판매 등 연관성만 있으면 가리지 않고 손을 댔다. 이는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자원만 낭비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대신 ‘일주일에 고객 1명 모시기’를 목표로 전단이라도 돌렸다면 2년이면 100명이 넘는 교육생을 배출한 알찬 기업체의 대표가 됐을 것이다.
셋째,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내가 원하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앞서 말한 두 차례 좌절의 이면에는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감정이 자리했다. 솔직히 퇴직 후 내가 그렸던 목표는 오롯이 내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남들이 어찌 볼까 걱정이 많았다. 비록 비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났지만 나라는 존재가 변함없이 건재함을 확인받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외부의 평가에 집착하는 태도는 성급함을 낳아 내리 패배감과 자괴감을 줬다.
주변을 보면 퇴직 후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한때 함께했던 직장 동료들은 다양한 길을 걷고 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 매주 전국의 산을 찾아다니기도 하며,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기도 한다. 그들은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거나, 산 정상에서 성취감을 얻거나, 학위라는 소망을 이루며 행복해한다. 반면에 나는 나를 증명하려는 욕심에만 사로잡혀 살았던 듯하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며 내실을 다졌다면 어땠을지 뒤늦게 생각해 본다.
최근 ‘원포인트업(One Point Up)’이 트렌드로 떠올랐다고 한다. 도달 가능한 한 가지 목표를 세워 실천함으로써 나다움을 잃지 않는 새로운 자기계발 패러다임을 뜻한다. 이번 새해 계획은 원포인트업 식으로 세워 보시면 어떨까. 을사년 한 해 모든 분들의 푸르른 꿈이 이뤄지길 바란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