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잠자는 게 억울한 아이들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빨리 자주는 것만큼 감사한 것이 또 있을까. 그런데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지치도록 놀아놓고도 좀처럼 자려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피곤해도 버틴다. 왜 아이들은 자려고 하지 않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은 잠자는 시간을 못 노는 시간, 손해 보는 시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선 이 마음부터 알고 있어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매일 반복되는 잠자리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이런 습관은 ‘아! 이제 잠을 자야 되는구나’를 예측하게 하고, 그 시간을 편안하게 느끼게 한다. 습관은 우리 집 사정에 맞게 융통성 있게 만든다. 저녁 식사 후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을 다 한 후 일정한 시간이 되면 아이에게 “자, 이제 잘 시간이야”라고 말한다. 10∼20분 정도의 가벼운 목욕을 하고,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운 후 부모가 동화나 옛날이야기를 해준다. 이 중 몇 가지를 빼도 되고 다른 것을 넣어도 된다. 가능한 한 매일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아이의 뇌 속 시계가 규칙적인 생활에 맞춰져 적응하기 시작한다. 잠들게 되는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의 갈등이 많이 줄어들게 된다.
아이가 빨리 안 자면 부모 입장에서는 하루가 마무리가 안 된다. 힘들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런다고 아이를 혼내서는 안 된다. 아이는 ‘내가 귀찮나? 내가 자면 뭘 하려고 그럴까?’라는 생각에 더 잠이 오지 않는다. 또한 야단을 맞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사람은 기분이 나빠지면 뇌가 흥분하기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짜증내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말해주는 편이 낫다. “네가 자야 엄마도 자고, 잠을 자야 힘이 생겨서 내일 너랑 더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어”라고 말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언제부터 혼자 재워야 하는지를 궁금해한다. 서양에서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아이를 혼자 재우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서상, 문화상 좀 어려운 면이 있다. 아이를 혼자 재워 봤는데 무리가 없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혼자 재우는 것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한다. 사실 몇 세부터 아이를 절대 혼자 재워야 한다는 원칙 같은 것은 없다. 아이가 꽤 컸는데도 부모와 자려고 하는 것이, 아이가 문제가 있거나 가정교육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사춘기가 되면 부모가 같이 자자고 해도 아이 스스로 싫다고 한다.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부모를 필요로 할 때, 아이가 아직 준비가 덜 됐을 때 부모가 옆에 있어 주고 함께 자는 것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혼자 재우기는 부모가 보기에 ‘이제 혼자 잘 수 있겠는데’라는 판단이 설 때 시도하면 된다. 이때도 단번에 혼자 자라고 하는 것보다는 아이가 자기 방에서 혼자 자는 것이 익숙해질 때까지 조금씩 시간을 두고 돕는다. 처음에는 아이 방에 데리고 가서 잠자리에 눕힌 다음 옆에서 옛날이야기도 해주고, 그림책도 읽어주면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 아이가 편안해져서 잠들면 나오는 식으로 한다. 이때 헝겊 인형이나 부드러운 이불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포근한 것을 끌어안고 자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혹여 아이가 잠에서 깨 울면서 부모를 찾거나 부를 수 있다. 그때는 아이의 방으로 다시 가서 처음에 했던 방법처럼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재운다.
아이마다 성격도 다르고 기질적 특성도 다르다. 옆집 아이는 더 어린 나이에, 금세 혼자 자기에 성공했더라도 우리 아이는 안 그럴 수 있다. 혼자 자다가 자주 깨서 부모를 찾는다면, ‘우리 아이는 아직 혼자 잘 준비가 안 되었구나. 아직 무서워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당분간 아이 방에서 부모가 함께 자주는 것이 좋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