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맘 먹고 집에 쓸 나무 가구를 맞추기로 했다. 일부러 서로 겹치는 지인이 없는 젊은 신인을 찾았다. 전자는 소개해준 사람이 사이에 껴 무안할 일이 없게 하고 싶어서, 후자는 그의 젊음에 내 불확실성을 거는 동시에 나의 발주가 그에게 기회가 됐으면 해서였다. 그 결과 찾아낸 젊은 가구 제작자는 내가 2024년 만난 보물 같은 인연이었다. 일도 잘하고 말도 잘 통해 개인적으로도 가까워졌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나의 직업에도 부스러기가 있다. 정보를 만들기 위해 기획해서 뭔가를 취재하고 편집하는 게 내 일이다. 일정한 수준과 분량의 정보를 만들려면 제작 과정에서 쓸 순 있으나 넣을 필요는 없는 것들이 생긴다. 글의 경우에는 재치 있는 표현을 기껏 생각해냈다 싶은데, 짧은 글에 그런 표현이 2번 들어가면 과하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런 걸 걷어내야 한다. 나는 나니까 내가 공들여 만든 게 아까울 수 있다. 바로 그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스러기는 일의 소중한 일부이기도 하다. 작업을 하다 남은 것들은 또 다른 일의 재료가 되곤 한다. 가구 제작자 역시 자기 작업의 부스러기를 잘 정리해두고 있었다. 나 역시 어떤 취재에서 알게 된 걸 그때 쓰지는 못하고 다른 기획에서 활용한 적이 많다. 어느 원고 편집 과정에서 잘라낸 재치 있는 표현으로 다른 글을 쓸 수도 있다. 남의 반응 역시 그게 뭐든 의미 있는 피드백이다. 외골수가 되자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걸 잊지 말고, 부스러기에 집중하지 말자는 뜻이다.
그때 보았던 가구 제작자의 눈빛이 종종 떠오른다. 그는 부스러기를 잊고 눈앞의 나무만 깎고 있었다. 목표에 집중하면 부스러기가 낄 틈이 없다. 오히려 외골수가 되면 부스러기에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결과물의 작은 세부 요소 하나에,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의 작은 반응 하나에. 그 역시 일에 집중한다는 방증이지만 올해는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 새해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새해에 하기 좋은 다짐 같아 이런 이야기를 적어 본다. 한 번쯤 각자의 목표와 부스러기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한다.
박찬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