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리야르 철학 ‘시뮐라시옹’… 가상이 실재를 대체하는 시대 진짜-가짜 구분할 기준 흔들려 환상속에서 영원한 행복 누릴까 조작된 세계는 현실될 수 없어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에서 원본의 복제를 넘어 원본과의 유사성을 잃고, 더 나아가 원본을 대체하기까지 하는 ‘시뮐라크르’를 설명하며 ‘지도’를 예시로 든다. 실제 땅과 비슷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땅보다도 중시된다는 것이다. 1689년 네덜란드에서 제작된 세계지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진짜보다 막강한 가짜 세계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빨간 약과 파란 약은 인간 스스로 진짜와 거짓을 가릴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선택의 자유를 뜻한다. 매트릭스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인공지능(AI)에 의해 뇌세포에 설치된 프로그램을 뜻하는데, 이것이 입력된 인간은 평생 가상현실 안에서만 살아간다. 모피어스가 “무엇이 현실이냐”고 묻자 네오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지각된 것일 뿐”이라고 대답한다. 매트릭스 안에서 인간의 감각과 느낌, 생각 모두 조작이 가능하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예를 들어, 우리가 서울이라고 하면 첫 번째 떠오르는 것이 지하철 노선이다. 그러나 반듯하게 그려진 지하철 노선도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편의를 위해 만든 것이다. 우리는 실재하는 울퉁불퉁한 땅보다 실재하지 않는 지도의 매끈한 이미지에 더 익숙하다. 마찬가지로 가상의 미키마우스가 실재하는 쥐보다 더 친숙하고, 메신저 속 이모티콘이 실재의 사람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시뮐라시옹을 통해 실재하는 많은 것들이 사라지게 되며, 실재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더 실재처럼 착각하게 된다.
실재하는 쥐보다 더 친숙한 미키마우스 캐릭터.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시뮐라시옹은 의학에서도 일어난다. 의사는 환자의 증상을 분석해 질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에 대해 진단 및 처방을 내린다. 그러나 멀쩡하지만 아픈 척하는 시뮐라시옹은 진짜 병과 가짜 병의 구분을 위협한다. 병든 척하는 사람은 침대에 누워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타인이 믿도록 만들면 되지만, 병의 시뮐라크르(가짜 증상)를 만드는 사람은 보드리야르의 지적처럼 실제로는 없는 병의 징후마저 만들어 내야 한다.
의학은 실체가 없는 가짜 질병을 다뤄야 하는 한계 상황 앞에서 무력해진다. 최첨단 진단 방법을 통해 얻은 객관적 자료들을 토대로 ‘진짜’ 병만을 다룰 줄 아는 명의는 아무 증상이 없는데 아프다고 우기는 환자 앞에서 난처함을 느낄 것이다. 의사는 실재하지 않는 병에 대해 더 이상 아무런 설명을 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매트릭스의 공간에 너무 익숙해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 매트릭스는 환상과 환각, 거짓된 경험을 통해 인간에게 행복감을 준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실재의 스테이크가 아니라 컴퓨터로 만들어진 이미지인 줄 알면서도 먹어서 맛있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쾌락을 삶의 목적으로 보는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는 미국 철학자 로버트 노직이 제시한 ‘경험 기계’가 유명하다. 경험 기계란 두뇌에 전극이 연결돼 평생 경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다. 원하는 경험만 선택해 일생 동안 고통 없이 지복(至福)을 누릴 수 있다면, 기계에 연결되기를 원하느냐고 노직은 묻는다. 노직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기계로 느끼는 행복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의 경험이므로, 실제적 접촉이 없는 행복은 ‘환각의 경험’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우리가 진실을 알게 되는 빨간 약 대신 매트릭스에 남으려고 파란 약을 원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진실을 대면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조작된 세계를 탈출하는 일보다 자신이 그동안 세상에 대해 확고하게 믿어온 생각을 모두 부정하는 일은 어렵다. 빨간 약처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내는 쉬운 방법이 없다면, 우리는 가짜로 조작된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지 늘 스스로 의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