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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무장군인 동원한 대통령, 국민 앞에 다시 설 순 없다

입력 | 2025-01-08 23:21:00

尹 지키는 방탄의원단-태극기부대
민주국가에 없는 계엄독재 물려줄 건가
‘이재명의 재판 시간표’와 상관 없이
헌재는 탄핵심판 엄정하게 진행하라



이대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부장검사 등 공수처 수사관들이 3일 오전 8시 30분 경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검문소에 진입해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 중이다. 2025.1.3 뉴스1


국민의힘 대선 주자 시절, 윤석열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냐. 맡겼기 때문이다. ‘국회는 잘 아는 너희가 하라’며 웬만한 거 다 넘겼다.”

전두환 옹호냐는 논란이 터지자 윤 대통령은 “잘한 건 잘한 것이고 쿠데타와 5·18은 잘못했다고 분명 얘기했다”고 해명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독재자 전두환에게 거꾸로 배웠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웬만한 것도 맡기지 않아 여당을, 선거를, 보수를 말아먹고 정치판은 극단으로 몰고 갔다.

군 미필 윤 대통령이 일으킨 12·3 친위 쿠데타는 ‘천년의 수치’를 남길 만큼 야만적이다. 전두환도 대통령 되고 난 뒤엔 감히 비상계엄을 때리지 못했다. 1981년 1월 24일 계엄을 해제하고 나서야 4일 뒤 방미해 한미 정상회담을 할 수 있었을 정도다.

“총을 쏴서라도 국회 문을 부숴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윤 대통령의 발포 명령은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다.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의 공소장에 나온다. 전두환도 5·18 발포 명령 책임은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계엄군이 총을 안 쐈기에 망정이지, 사람이라도 죽었다면 천년만년 ‘살인마’ 소리 들을 뻔했다.

그럼에도 이 엄동설한 관저 앞에는 ‘계엄 찬성’ ‘탄핵 무효’를 외치는 군중이 있다. 윤 대통령이 계엄 발동 이유로 들었던 야당의 입법남용, 탄핵남발, 예산삭감, 선거부정을 열거하며 “나 같아도 계엄한다”고 주장한다. 2017년 초 박근혜 탄핵 사태 때도 그랬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계엄령이 답’이라고 그들은 소리쳤다.

반공정신에 불타는 애국동지들은 계엄과 군부독재가 ‘이재명의 민주당’보다 낫다고 믿는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민주국가에선 군부가 기본권을 제한하는 계엄이란 상상도 못한다. 우리와 대만에서만 군국주의 일본의 계엄법제가 남긴 악법을 북한, 중국과 대치한다는 이유로 1980년대까지 끌고 갔던 거다.

정작 일본엔 계엄령이 없다. 프랑스는 1958년 제5공화국 헌법에 계엄령 조항이 있지만 발동한 적 없다. 미국 연방헌법, 독일 기본법도 계엄 언급 없이 국가긴급권 등만 있을 뿐이다. 현재 미얀마와 브루나이 그리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빼곤 윤 대통령처럼 평상시 비상계엄 선포한 나라는 없다. 그래서 세계가 놀라 우리를 주시했고, 헌법에 따른 탄핵소추에 박수를 보냈던 거다.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 이유에서 ‘내란죄’ 철회를 놓고 말들이 많다. 대통령 측은 “내란죄가 전제돼야 탄핵도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탄핵을, 실패한 계엄을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것 같다.

동의 못 한다. 헌법에 따르면, 비상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는 경우여야 선포하게 돼 있다. 비상계엄에서도 정치 활동은 금지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평상시인데도 국회에 무장군인을 동원해 발포 명령까지 내렸다. 내란죄가 아니어도 이것만으로도 그는 다신 대통령으로 설 수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어떤 빌미도 잡히지 않기 위해 국회가 내란죄를 철회할 경우, 여야는 탄핵소추안을 다시 표결했으면 한다. 어떤 노예근성의 여당 의원이 계엄군을 동원해 국회를 막은 대통령한테 탄핵 반대표를 주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판단을 헌재에 맡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헌재는 ‘이재명의 민주당’ 재판 시간표에 맞춰 서둘러 끝내선 안 될 일이다. 내란죄 여부까지 시간이 걸려도 정확하게, 또박또박 양심에 따라, 국민만 바라보고 심판하기 바란다.

민주화 투사 김영삼 대통령은 5공 군부권위주의 민정당에 민주화세력을 이식함으로써 1993년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다. 취임 100일 만에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하며 다신 쿠데타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특별법을 통해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된다는 것을, 그리하여 작가 한강이 물었듯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특수통 검사 출신 대통령 윤석열은 무능한 ‘충암파’를 동원한 45년 만의 계엄으로 좀비 같은 민정당 씨앗을 살려냈다. 검찰의 상명하복 DNA로도 모자라 군부독재 DNA까지 더해 대한민국을 반세기나 후진시키고도 법적 정치적 책임을 지기는커녕, 벙커 같은 관저에서 방탄의원들-태극기부대-극우 유튜버로 만리장성을 쌓고는 장기농성으로 국제 망신을 시킬 태세다.

윤 대통령은 전두환보다 모르면서 모질고 모자랐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면서 “그럼 개헌이라도 해”라고 한 걸 ‘계엄’으로 알아들었다는 아재 개그까지 떠돈다. 차라리 그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