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에 전국 첫 ‘청각장애체험관’ 자막 안경 등 보조기구 써볼 수 있고, 입 모양으로 단어 맞히는 독화체험 문화시설-심리상담실 등 구축하고… 청각장애인 자녀에 정서적 지원도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시립 서대문농아인복지관 별관에 자리한 ‘청각장애체험관’을 찾은 방문객(왼쪽)이 유리 너머 사람의 입 모양을 보고 유추한 단어를 화이트보드에 적어 들어 보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입 모양을 읽는 ‘독화’ 체험이다. 서울시는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19일 전국 최초로 청각장애체험관을 열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가구? 자주? 정말 모르겠네요.”
7일 오후 서울 서대문농아인복지관 별관 4층. 이날 이곳에 마련된 ‘청각장애체험관’을 찾은 서대문구 주민 이원우 씨(60)가 미간을 찌푸리고 유리 너머 복지관 직원의 입 모양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직원이 입으로 단어를 여러 차례 말해도 이 씨의 화이트보드에는 계속해서 오답이 채워졌다. 그러다 직원이 손가락으로 두 글자 단어라는 힌트를 주고 단어를 10번 정도 더 반복하자 그제야 이 씨는 “아, 약국!”이라고 외쳤다. 유리 너머의 직원이 정답이라는 뜻으로 팔을 머리 위로 들어 동그라미를 만들자, 이 씨는 “입 모양만 보고 무슨 말인지 알아내기 정말 쉽지 않다”며 멋쩍게 웃었다.
● 독화체험·보조기구 전시 등
7일 청각장애체험관에서는 입 모양만 보고 단어를 알아맞히는 독화 체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소통체험방’이라고 적힌 유리벽 안에서 방음문을 닫고 차음 헤드셋까지 쓴 관람객들은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며 당황하더니 이내 체험관 직원의 입 모양에 집중하며 단어를 유추하기 시작했다. ‘의사’라는 단어를 ‘쓰다’라고 알아듣는가 하면, ‘자다’라는 단어는 아무도 맞히지 못해 수어 힌트를 보고 겨우 답을 내었다. 이 씨는 “쉽게 맞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입 모양만 보고 단어를 알아내는 게 어려웠다”며 “체험을 해보니 들리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느꼈다”고 말했다. 김선례 씨(67)도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 파도가 치는 소리,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 등 일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막막한 일인지 직접 느껴보니 더 와닿는다”고 말했다.
이어 ‘청각장애이해관’으로 진입하자 영상전화기, 보이는 화재경보기, 자막 안경, 초인등(불빛으로 신호를 주는 초인종) 등 청각장애인 보조기구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었다. 복지관 관계자가 “청각장애인들은 소리를 들을 수 없기에 보조기구는 시각적인 요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관계자가 화재경보기를 누르자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빨간 불빛이 번쩍였다. 초인등을 누르니 벨소리와 함께 파란 불빛이 반짝였다.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기구는 자막 안경이었다. 기자도 안경을 시착해 보았다. ‘잘 들리세요?’라는 직원의 말이 눈앞에 나타났다. 대화를 나누는 상대의 말이 실시간 문자메시지처럼 안경 렌즈에 표출되는 것이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자막을 읽은 덕분에 대화를 진행할 수 있었다. 복지관 관계자는 “청각장애는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아 다른 장애보다 덜 불편하다고 오해하기 쉽다”며 “시각장애는 사물과 멀어지게 하지만 청각장애는 사람과 멀어지게 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서울시, 의료·안전 분야 공무원 대상 수어 교육
체험관이 들어선 서대문농아인복지관 별관은 본관 대비(993m²) 3.4배가량 넓은 3392m²(약 1026평) 규모로, 2021년 5월 공사를 시작해 3년 7개월여 만에 완공했다. 별관을 지으면서 4층을 체험관으로 조성했다. 이곳에는 체험관뿐 아니라 청각장애인 직업체험실, 심리상담실, 게임문화체험관, 옥상정원 등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