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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前 美대사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일을… 계엄 직후 심각한 우려”[데스크가 만난 사람]

입력 | 2025-01-09 03:00:00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 단독 인터뷰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퇴임 하루 전인 5일 서울 중구 미 대사관저인 ‘하비브 하우스’에서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12·3 불법계엄 상황 초기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던 그는 “한국이 민주적이고 헌법적 절차에 따른 방식으로 문제를 잘 풀어 낼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한국과 미국은 너무나 긴밀히 얽힌 동맹”이라며 계엄 후폭풍에도 양국 관계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사진)는 불법 계엄이 선포됐던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지에 대한 추가 설명을 대통령실 인사에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계엄에 대해 심각한 우려(grave concern)를 표명했고 그것이 한국의 평판을 크게 훼손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골드버그 전 대사는 퇴임을 하루 앞둔 5일 현직 신분으로는 마지막으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내용의, 내가 들은 계엄 포고령 내용에 반대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측과의 접촉에 어려움을 겪다 가까스로 연결된 대통령실 인사와의 통화였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상황을 경고하고, 미국 워싱턴에서 신속하게 성명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계엄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이었다”며 밤을 새워 한국 측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본국과 교신했던 당시의 긴박한 대응 과정을 설명했다.





“고함치며 반대한 韓 계엄… 헌법적 절차 따른 해결 역량 믿는다”


韓계엄, 일어나지 않았길 바란 불행… 민주주의와 헌법 작동 역량 믿어
‘상종 못할 정부’ 발언은 지어낸 허위… 北 오판, 도발 가능성에 지속적 대비
한미동맹, 정권 바뀌어도 초당적 지지… 韓에서 대사 마무리 영광, 최선 다했다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퇴임 하루 전인 5일 서울 중구 미 대사관저인 ‘하비브 하우스’에서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12·3 불법계엄 상황 초기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던 그는 “한국이 민주적이고 헌법적 절차에 따른 방식으로 문제를 잘 풀어 낼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한국과 미국은 너무나 긴밀히 얽힌 동맹”이라며 계엄 후폭풍에도 양국 관계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2·3 계엄령이 선포되던 밤, 필립 골드버그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외교부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이 외교부 인사가 통보하듯 읽어내린 계엄 관련 성명서. 퇴임까지 불과 한 달밖에 남지 않은 그의 마지막 한 달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임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35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콜롬비아, 필리핀, 쿠바 등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의 대사로 권위주의 지도자들을 상대해 온 그였다. 극적인 순간들을 수없이 겪어낸 국무부 최고위 ‘경력대사’다. 그런 골드버그 대사에게조차 한국의 계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충격적 상황이었을 것이다.》


골드버그 대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5일 저녁 서울 중구의 대사관저를 찾았을 때 그는 짐을 싸고 있었다고 했다. 워싱턴으로의 출국을 단 하루 앞둔 날이었건만 미처 떠날 준비를 다 하지 못한 듯했다. 고별파티 대신 방한 중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수행하면서 한미 동맹이 굳건하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업무로 마지막 일정을 채웠다. 골드버그 대사는 “계엄은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라는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한국의 헌법과 민주주의는 계속 작동하고 있다”며 “우리는 한국인들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계엄 사태는 70년 넘게 동맹을 유지해 온 미국으로서도 예상치 못한 혼란이었을 것 같다. 정치적 후폭풍도 거세지고 있는데….

“슬픈 사건이고 슬픈 시기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매우 신속하고 초당적인 (계엄 해제) 조치를 취했고, 두 번째 표결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헌법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혼란이 발생했고 정치적 분열이 존재한다. 민주적이고, 헌법적이며, 평화로운 방식으로 풀어내야 할 과제들이다. 그 과정에서 부침을 겪겠지만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됐을 때 내가 언급한 이 원칙들은 지켜져 있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대사로서 겪은 ‘계엄의 밤’은 어떤 것이었나.

“외교부의 누군가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계엄 관련 성명서(statement)를 읽어줬다. 나는 이의를 제기했고, 반대를 표명했다. 이어서 대통령실의 누군가와 통화했는데 그는 계엄과 관련해 아는 게 없어 보였다. 나는 심대한 우려를 표시했고,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지에 대한 추가 설명을 요구했다. 계엄이 한국의 명성을 크게 훼손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화 중 고함을 질렀냐’는 질문에 답변이 끊겼다. 10초 넘게 침묵하던 골드버그 대사가 “조금 그랬다”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을 때 그의 표정은 단호해져 있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계엄 다음 날 곧바로 영문 웹사이트 메인 화면에 적색 경보(Alert)를 띄웠다. 같은 날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심각하게 오판했다”는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의 비판이 나왔다. 동맹국을 상대로 이례적으로 강경한 조치였다.

―대사가 윤석열 정부에 대해 ‘상종 못 할 사람들’이라는 취지로 본국에 보고했다는 한국 국회의원의 발언이 나왔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이에 대해 ‘완전히 틀렸다’는 설명 자료를 냈다.

“계엄 선포 후 며칠간 많은 소문이 돌았는데, 많은 것이 나 혹은 대사관, 파이브아이즈 등을 출처로 한 것이었다. 모두 지어낸(all made up) 허위 내용이었다. 이런 헛소문은 멈춰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 내가 본국에 보고한 내용을 국회의원이 도대체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더구나 내가 보고한 내용도 전혀 아니었다. 우리가 하는 일과 말에 대해 이런 식의 허위 정보를 지어내서는 안 된다는 나의 뜻이 분명하게 전달되기를 원했다.”

―그렇다면 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실제 내용은 어떤 것들이었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논의들이 있었다. 미국인들에게 상황을 경고하고, 워싱턴에서 신속하게 성명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국의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것이었다. 초기 몇 시간 동안 우리가 아는 모든 이들이 경계 상태를 갖출 수 있도록 대사관 내 조직을 정비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그날은 밤을 새웠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미국 측을 ‘오도(mislead)’하기 싫어서 전화를 안 받았다고 했는데, 급박한 상황에서 연락이 안 된 건 문제 아닌가.


“조 장관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사실 그에게 직접 전화를 하진 않았다. 조 장관이 나에게 콜백하지 않은 것을 그런 식으로 말한 게 아닌가 싶다. 당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느꼈기에 우리에게 연락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린 듯하다. 그날 밤, 내가 앞서 말한 두 통의 전화를 빼면 아무도 전화를 안 받은 건 사실이다. 다만 모두가 일종의 ‘쇼크’ 상태였을 것이기에 너무 비판적으로 볼 생각은 없다.”

―주한미군과 협력해야 할 한국군 수뇌부 상당수는 구속 기소돼 리더십 공백이 발생한 상황이다. 계엄이 촉발한 혼란 상황에서 북한이 오판하고 도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나.

“일부 군 인사들이 계엄으로 기소됐지만 합참의장과 다른 수뇌부는 그대로 있고, 공석이 된 자리는 대행이 신속하게 채웠다. 주한미군과 연합사령부, 유엔군사령부는 한국의 군 지도부와 계속 접촉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떤 사태에도 준비돼 있고, 북한의 위협과 도발에 맞서 지속적인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미국은 12·3 이후 지금까지 한미 동맹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지금 같은 상황이 장기화해도 영향이 없다고 보나.


“그런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민주주의를 고쳐 나가려는 우리의 시도는 불완전하게나마 결국은 이뤄진다고 믿는다. (한국인들이 느끼는) 두려움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한국인들을 신뢰하고, 민주적 헌법적 기관들이 작동할 역량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올해 한국에서 다시 대선이 치러져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면 한미 관계나 한미일 협력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미국 일각에서도 나오는데….

“한국인의 70∼80%가 미국에 우호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안보는 물론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기술과 비즈니스 등으로 확장해가는 이 강력한 동맹을 지켜나가는 것은 미국과 한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양국의 동맹은 한국 민주당을 포함해 양국의 엄청난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다. 몇 주 전에 민주당 대표를 만났을 때 그는 한미일 3자 협력 및 일본과의 양자 협력 관계를 지지한다고 했다. 정권이 바뀌면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는 식의 인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동맹이 소중하다지만, 거리 시위에 성조기가 나부끼는 게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나.

“완전히 이해되는 건 아니다. 다만 시위에 참여한 보수 지지자들의 상당수는 나이가 있는 분들이다. 그들은 전쟁을 겪은 세대이거나, 전쟁을 겪은 이들의 자녀일 것이다. 이것과 상관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서명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2024.11.4

―한국에서는 소위 ‘트럼프 리스크’가 닥쳐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방위비분담금 증액,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지원 철회 등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나.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펼칠지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직접 확인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다만 양국 기본 관계의 바탕은 강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외교 활동에 도전이 되는, 지금과는 다른 정책들이 나오겠지만 경제와 안보의 기본 관계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직접 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실제 상황이 전개되면 ‘비핵화’ 목표가 유지될 수 있을까.

“비핵화는 트럼프 1기 행정부를 포함한 미국의 지속적인 정책 목표였다.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비확산과 평화, 안정을 위해 중요한 목표다. 러시아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자신들이 지지해 왔던 (유엔) 결의안을 위반하겠다고 할 때까지는 거의 모든 나라가 동의했다. 비핵화 목표는 유지되겠지만 달성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예정했던 인터뷰 시간이 훌쩍 지났다. 골드버그 대사는 “이제 남은 짐을 싸야겠다”며 일어섰다. 그제야 물어본 퇴임 소감에는 “긴 경력을 이제 끝내는 것이 행복하고 슬프고 만족스럽다”고 했다. “지난 한 달은 분명히 어려운 시기였지만, 마지막 부임지인 한국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에서 대사로 근무한 것은 정말로 큰 영광이었다”고 했다. “정말로 멋지고 친절했던 한국 사람들이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여운이 짙었다.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69)

△2006∼2008년 주볼리비아 대사
△2009∼2010년 유엔 대북제재 조정관
△2010∼2013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차관보
△2013∼2016년 주필리핀 대사
△2018년 주쿠바 대사대리
△2019년 8월 주콜롬비아 대사
△2022년 7월∼2025년 1월 주한 미국대사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