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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장(醬)’은 수천 년 전부터 음식을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우리 민족이 고안해 낸 음식이다. 장 담그기는 콩을 발효시키는 것으로, 다른 나라에는 없고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화다. 앞선 칼럼에서 청국장을 포함한 장의 뿌리와 의미를 콩의 원산지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곁들여 소개한 바 있다. 늦가을에 타작해 거둬들인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이를 깔아 놓은 지푸라기 위에 놓으면 며칠이 지나면 마른다. 말린 메주를 긴 짚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새끼를 꼬아 메주의 네 측면을 세로로 묶어 걸고 처마 밑에 매달아 두 달 정도 둔다. 메주가 마르기 시작하면 마른 부분이 수축돼 금이 가면서 표면적이 늘어난다.
이렇게 늘어난 표면에서 표면 발효가 일어나 메주가 훨씬 잘 뜨기 시작한다. 지푸라기에서 나오는 바실루스균과 처마 밑 공기 중에 있는 아스페르길루스 곰팡이가 발효에 있어 큰 역할을 한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맹추위도 어느 정도 지나고 밤과 낮의 온도 차도 크게 나지 않을 때 잘 뜨인 메주를 꺼내 독에 넣고 적당한 소금(천일염)을 뿌려 장을 담근다. 담근 장을 두서너 달 두면 액상발효가 일어나고 발효미생물에서 다양한 효소가 나와 펩타이드나 아미노산, 이소플라보노이드 등을 만들면서 맛있는 장이 된다.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됐으니 2000년 동안 지켜온 우리 전통 장 문화를 국내외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먼저 ‘장의 날’을 제정해 장 담그는 문화를 기념하고, 장을 담가 보는 행사를 했으면 한다. 우리 조상들은 실질적으로 정월 대보름이 지난 ‘말날’(午日, 말의 날)에 장을 담갔다. 남쪽 지방에서는 대보름 지나 첫 번째나 두 번째 말날에, 중부나 북부지방은 두 번째나 세 번째 말날에 장을 담갔다.
이 전통을 살려 음력으로 ‘장의 날’로 기념하고 장 담그는 행사도 하면 좋겠지만 음력이라 매년 바뀌는 단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장 담그기의 과학적인 의미를 살려 아무래도 양력으로 ‘장의 날’로 잡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하지만 음력으로 해야 좋을 것인지 양력으로 해야 좋을 것인지는 전문가의 논의를 통해 결정돼야 할 것이다. 참고로 정월 대보름 후 말날을 오늘날 양력으로 바꾸면 어림잡아 2월 20일에서 3월 10일 사이에 해당된다. 이번 기회에 우리 장이 세계적으로 ‘맛있는 소스’로 자리매김하고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