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욕망 괴물로 변하는 ‘가상화폐 품은 청년’

입력 | 2025-01-10 03:00:00

배우 송재림 유작 영화 ‘폭락’



배우 송재림(오른쪽)은 영화 ‘폭락’에서 청년 사업가 ‘도현’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영화로운형제 제공


“여러분들은 운 진짜 좋은 거야.”

청년 사업가 ‘도현’(송재림)은 투자 설명회에서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자신이 개발한 암호화폐 ‘마미’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꼬드김이다. 하지만 곧 도현은 암호화폐의 알고리즘을 조작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다. 해외로 도피한 뒤에도 “내가 사기꾼 같냐”며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도현은 어쩌다 이런 괴물이 된 걸까.

15일 개봉하는 영화 ‘폭락’은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를 모티브로 삼았다. 달을 형상화한 영화 속 암호화폐 마미의 광고, 각종 범죄로 최고 130년 형을 받을 수 있다는 설정은 현재 미국 연방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는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34)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에서 특히 눈여겨볼 건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배우 송재림이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우씨왕후’로 인기를 얻었던 고인은 영화에서 야망을 지닌 청년이 어떻게 욕망에 가득 찬 괴물로 변하는지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연출을 맡은 현해리 감독은 6일 기자간담회에서 “송 배우와 대화하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면서 “너무 보고 싶은데 아쉽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파고들어 간 점도 주목할 만하다. 도현을 ‘강남 8학군’에 입성시키기 위해 위장 전입한 엄마, 도현에게 “삼수할 거냐”며 꾸짖는 학원 선생, 대학 창업동아리에서 분식회계를 부탁하는 선배 등 도현이 변해 가는 과정에 영향을 끼친 이들을 다양한 각도로 비추고 있다.

다만 도현이 대중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과정은 그다지 생생한 실감이 살아나질 않는다. 다소 느슨한 느낌마저 없지 않다. 미 월스트리트 사기 실화를 그린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년)가 맛깔스러운 대사와 감각적인 연출을 선보였던 걸 떠올리면,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점도 아쉽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