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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가 세상과 마음을 다스린 조선시대 감영 원림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입력 | 2025-01-10 07:00:00


심원건축학술상 열 번째 총서,
‘풍경과 다스림-조선시대 감영 원림의 역사와 미학’

2018년 복원된 강원 원주 강원감영 후원. 임한솔 연구원 제공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을사(乙巳)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첫 ‘시크릿가든’은 심원건축학술상의 열 번째 총서인 ‘풍경과 다스림-조선시대 감영 원림의 역사와 미학’을 소개합니다.

토요일이었던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이건하우스에서 심원건축학술상 제15회 수상작 출판기념회가 열려 다녀왔어요. 심원건축학술상은 심원문화사업회(이사장 이태규)가 2008년부터 건축 역사, 이론, 미학, 비평 분야의 신진 연구자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상입니다. 이 상을 받아 이번에 출간된 도서는 임한솔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선임연구원(37)이 쓴 ‘풍경과 다스림-조선시대 감영 원림의 역사와 미학’입니다.

●심원건축학술상을 아시나요

심원건축학술상은 연구자들에게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건축계에서 건축물에 수여하는 상은 많지만, 건축 관련 인문학 연구를 시상하는 경우는 드문데요. 이 상은 1500만 원의 상금과 출판을 지원합니다.

4일 심원건축학술상 제15회 수상작 출판기념회에서 이태규 심원문화사업회 이사장(왼쪽)이 수상자인 임한솔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축하하는 모습. 사진 김재경 작가, 심원문화사업회 제공

이 상이 탄생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이태규 심원문화사업회 이사장(54·엠에스오토텍 사장)은 부친인 엠에스오토텍 창업주(회장)가 경영해 온 공장의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심원’이라는 이름의 작은 사무소를 운영하는 김광재 건축가를 소개받아 친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그런데 공장 완공을 몇 달 앞두고 김 건축가가 지병으로 세상을 뜨지요. 그를 기리며 만든 상이 심원건축학술상입니다.

2008년 이 상의 제정 의지에 뜻을 모은 중견 건축학자들이 모여 1기 위원회를 꾸렸습니다. 그중 한 명인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말합니다. “건축사처럼 어려운 공부를 하는 연구자를 지원하겠다는 큰 방향은 이태규 이사장이 정했고, 위원회에서는 세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연구의 지역과 시대를 가리지 않고, 절대적으로 새로운 지식 이론을 개발한 연구자에게 수여하며, 수준이 못 미치면 수상작을 내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덕분에 이 상이 학술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 같습니다.”

올해로 15회인 이 상에서 열 번째 총서가 발간된 것은 다섯 번은 수상작을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태규 이사장은 이날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해 수상자를 축하했습니다.

●“고유한 풍광을 담은 감영 원림”

이번에 책을 펴낸 임한솔 연구원은 건축과 조경을 두루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감영 원림’이라는 학문적 개념을 도출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영(監營)은 조선시대 도(道)를 총괄하는 지방 행정조직, 원림(園林)은 자연을 감상하기 위한 인위적 장치입니다. 고로 감영 원림은 요즘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관찰사가 조성한 원림(정원의 확장된 개념)을 뜻합니다.

조선시대 감영 소재지는 현재 기준으로 남한에 5곳, 북한에 3곳 있습니다. 남북한을 막론하고 감영 본청과 객사, 성곽의 터는 식민지 시기에 근대 시설로 전용되며 대부분 원형을 잃었는데요. 다만 성문 등이 일부 남아있고 2000년대 이후에는 각 지역의 문화 콘텐츠로 주목받아 발굴과 복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강원 원주 강원감영, 충남 공주 공북루, 전주 풍남문 등이 감영 원림 유적입니다.

김동욱 경기대 건축학과 명예교수(전 한국건축역사학회장)는 추천사를 통해 밝힙니다. “조선시대 지방에 조성된 감영은 잘 알려지지 않은 별세계였다. 감영 원림은 궁궐 후원처럼 넓고 화려하지 않고 선비들이 지은 작은 원림의 소박함과도 구별되는 색다른 공간이었다. 팔도마다 고유한 풍광과 예술혼이 각각의 감영 원림에서 꽃을 피웠다.”

황해도 감영의 소재지였던 해주 부용당의 식민지 시기 모습. 부용당은 상업도시 해주의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정원으로 유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책에 따르면 조선의 원림은 조선의 사상적 기반인 신유학(성리학)의 자연관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신유학의 원림관은 도덕을 추구하고 개인의 깨달음으로 세상의 이로움을 확장한다는 것이지요. 특히 조선시대 감영 원림은 주로 높은 곳에서 먼 풍경을 바라보는 조망을 구현함으로써 자연과 인위의 양립을 이뤘습니다.

조선시대 문신 서거정의 공주객사 취원루의 기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이 정자의 좋은 것이 한둘이 아니나 먼 것을 모은 것(취원·聚遠)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하였는데 이는 멀리 있는 모든 좋은 경치를 이 한 곳의 누(樓)로 모아들였다는 것이다.” 풍경을 보는 통치자가 사물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통해 마음을 다잡고 세상을 살피며 더 나은 정치를 해내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풍경을 매개로 다스리는 곳”
조선시대 감영 원림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임 연구원으로부터 들어봤습니다.

임한솔 연구원.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책에서 왜 ‘정원’이 아니고 ‘원림’이라고 썼는가.
“‘정원’은 건축물이나 담장으로 둘러싸인 마당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책의 서술 대상들은 그 방식으로 한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정원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원림’이라고 썼다.”

―감영 원림은 조선시대 다른 정원과 무엇이 다른가.
“도시 중심에 위치한 실권자의 정원이므로 ‘좋은 정치’라는 조성 목적이 분명했다. 깊은 곳에 숨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감상 대상으로 삼아 통치자인 관찰사가 자신을 돌아보며 가다듬었다.”

전주 풍남문 일대 전경. 전주시 제공


―감영 원림은 지방 최고 정치인의 사치품 아니었나.
“단순 사치품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밖으로 드러난 공간이라 정원에서의 행동이 그대로 노출됐다. 감영 원림에서 관찰사가 연회를 베푸는 걸 보고 백성이 괴롭다면 나쁜 정치, 기쁘다면 좋은 정치였다.”

―‘풍경과 다스림’이라는 책 제목을 쓴 의도는.
“풍경을 통해 바라보는 것은 바깥세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찰사 스스로이기도 하다. 감영 원림은 결국 통치자가 풍경을 매개로 지역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곳이다. 풍경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길을 찾는 것은 지금의 우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좋은 정치’의 공간
조선시대 감영은 높은 담장을 세우는 대신 열린 시야를 갖췄습니다. 통치자가 백성의 생활공간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기 때문에 즐거움과 다스림이 조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병치를 통해 수기치인(修己治人·자신을 닦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다스리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조선시대 관찰사가 관할 지역을 순찰할 때는 남원 광한루원 등의 누정에 머물렀다. 국가유산청 제공

또 옛 기록들에 따르면 관찰사는 접객과 연회를 매개로 아름다운 풍경을 독점하지 않고 여럿과 두루 교류하며 나눴습니다. 자기만의 성(城)에 갇혀 독단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좋은 정치’의 실마리가 조선시대 감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충남 공주에 가 볼까 합니다. 1984년 보물로 지정된 지 41년 만에 국보로 지정된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도 보고, 감영 원림 유적인 공산성 공북루(충남 유형문화유산)에도 오르려 합니다. 그러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려나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