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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멕시코 “마약 단속 강화”… 트럼프 ‘매드맨 전략’ 또 통했다

입력 | 2025-02-05 03:00:00

[트럼프發 통상전쟁]
‘관세 폭탄’ 밝히며 공포감 극대화
캐나다, ‘펜타닐 차르’ 등 약속에… 멕시코도 군인 1만명 파견하기로
“美, 출혈없이 국경강화 성과 만들어”… 1기때도 “분노와 화염” 北협상 끌어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앞줄 가운데)이 3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플로리다 팬서스’의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우승 축하연에서 하키 스틱과 제47대 대통령을 상징하는 등번호 47의 선수복을 선물 받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미국은 멕시코, 캐나다에 예고했던 각각 25%의 관세 적용을 30일 동안 유예했다. 다만 미 동부 시간 4일 0시(한국 시간 4일 오후 2시)부터 중국산 제품에 대한 10% 추가 관세는 예정대로 시행하기로 했다. 워싱턴=AP 뉴시스


“1월 20일(대통령 취임일), 나는 멕시코와 캐나다의 모든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말 트루스소셜에 이 같은 글을 올리며 ‘통상전쟁’을 예고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이달 1일부터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도 관련 행정명령 서명은 미뤘다.

이후 1일 그는 4일 0시(미 동부 시간 기준·한국 시간 4일 오후 2시)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를, 중국에는 기존 관세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리고 ‘관세 폭격 디데이’ 하루 전인 3일 “(요구 사항을 수용한)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 부과는 한 달 유예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두고 전형적인 ‘매드맨식 최대 압박(Madman’s Maximum Pressure)’ 전략이란 평가가 나온다. 리처드 닉슨 전 미 대통령의 외교전략 중 하나였던 ‘매드맨(미치광이) 전략’은 자신을 예측 불가능한 인물로 포장해 상대를 혼란과 공포에 빠뜨린 뒤, 협상에서 최대한의 이득을 취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폭탄’에 대한 공포감을 극대화한 뒤 멕시코와 캐나다로부터 불법 이민자와 마약류 유입을 막기 위한 높은 수준의 협조를 받아냈다. 관세 부과를 결정한 중국을 통해서도 ‘요구 미수용 땐 조치를 취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 “멕시코와 캐나다, 트럼프 ‘살라미식’ 압박에 피 말랐을 것”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관세 부과 과정에서 언제든 ‘충격과 공포’를 야기할 수 있다는 자신의 협상 스타일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캐나다는 △국경 강화 계획 마련 △마약 문제를 담당할 ‘펜타닐 차르’ 임명 △마약 차단 인력 1만 명 유지 등을 약속했다. 멕시코도 군인 1만 명을 국경에 파견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멕시코와 캐나다는 트럼프의 ‘살라미(쪼개기)식 압박’에 피가 말랐을 것”이라며 “미국은 출혈 없이 캐나다로부터 (국경 강화를 위한) 13억 달러 투입을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1기 때도 매드맨 전략을 활용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미 협상 과정이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북한을 겨냥해 “분노와 화염을 볼 것” “군사 옵션이 완전히 장전됐다”고 위협해 긴장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뒤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2017년엔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를 미치광이(Crazy)로 포장할 것을 주문한 사실도 알려졌다. 당시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담당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이 사람이 너무 미쳐서 당장이라도 손을 뗄 수 있다고 그들(한국인들)에게 말하라”고 지시했다.

취임 직후부터 매드맨식 최대 압박 전략을 구사한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이 카드를 통상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등 다른 분야에서도 활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는 이번 관세 부과 과정에서 북한 러시아 이란 같은 적대국에 대한 경제 제재 등에 주로 적용한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까지 꺼내 들었다. 이 역시 1기 때보다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 中에 60% 관세 거론하다 10% 부과도 협상 전략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10% 추가 관세 부과는 기존 발표처럼 4일 그대로 강행했다. 다만 여기에도 중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 담겨 있을 수 있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60%까지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단은 10% 관세로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는 이번 조치를 “개시 사격(opening salvo)”으로 표현했다. 또 “중국과 합의하지 못하면 관세는 상당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 역시 중국과의 전면전은 최대한 피하면서 협상을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한 매드맨 전략이란 평가가 나온다. 중국 싱크탱크인 푸단발전연구소는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를 압박하고 실질적인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모호한 전략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르면 이번 주 내 통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매드맨’(madman·미치광이) 전략자신을 예측 불가능한 미치광이처럼 보이도록 해 상대방에게 공포와 혼란을 유발하면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전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방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에 25%의 ‘관세 폭탄’ 같은 거친 압박을 가했지만 두 나라가 자신의 요청대로 국경 및 마약 단속을 강화하기로 하자 관세 부과를 한 달 유예했다. 그는 집권 1기 때도 북한을 연일 위협한 후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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