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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 이름을 왜 한자에서 찾아야 하나?[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입력 | 2025-02-06 23:09:00


게티이미지뱅크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요즘 제대로 된 감자탕을 먹기가 쉽지 않다. 감자가 들어가고 뼈다귀도 사전에 다듬어 재서 고기가 부드럽고, 잘 익은 묵은지로 만든 우거지가 부드러워 술술 넘어가는 감자탕을 파는 집이 많지 않다. 대부분 뼈다귀와 우거지를 업체로부터 공급받아 그대로 쓰기 때문에 고기는 퍽퍽하며 우거지는 질기고 맛도 거칠다. 감자탕을 파는 집은 많아도 감자탕을 제대로 하는 집이 적다. 감자탕에 감자도 없다. 그래서 감자탕의 어원 논란이 생겼다.

1980년대 위성중계가 보편화될 때 권투나 A매치 축구 중계를 잘하는 분이 있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C 아나운서였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 대표팀이 세계 4강에 오를 때 그분의 흥분된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후배 아나운서들에게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써야 한다고 많이 하셨던, 존경받은 분이었다고 한다. 그분은 감자탕 이름이 한자어 ‘감저탕(甘猪湯)’에서 온 것이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존경받은 유명한 분의 말이라 그 영향력이 컸다.

또 몇 년 전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소개하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느 외국 군인이 감자탕을 좋아한다면서 감자가 없는데 왜 감자탕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감자탕에 들어가는 돼지고기 부위 일부가 한자로 ‘감자’라고 불려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든 사전을 동원해도 감자라는 부위가 돼지 뼈 어느 부위인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들이 감자탕을 만들어 팔았을 때 감자라는 부위를 과연 알았을까? 말이 되지 않는다.

과연 우리 음식의 이름은 누가 붙일까? 감자탕을 만들어 먹으면서, 한자를 많이 아는 사람을 찾아서 “어떻게 붙일까요?” 물어보고 한자 이름을 받아 붙였을까? 우리 음식 감자탕이라는 이름은 한자와 상관없이 감자를 중심으로 탕을 만들어 팔고, 먹는 사람에 의해서 붙여진 것이다. 그런데도 지식인이 한자나 일본어를 들이대고 이야기하면 진실인 줄 알고 쉽게 받아들인다. 대표적으로 감자탕과 닭도리탕이다.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음식인데도 이름이 한자나 일본어에서 왔다는 주장이 거침없이 나온다.

1970년대 초반에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많아 서울 인구가 급증했다. 대부분 고기를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없었다. 그때 돈 없는 사람들이 감자탕을 맛있게 사 먹었다. 하지 때가 되면 감자가 나온다. 묵은김치에 주로 감자를 넣고 비록 살코기는 아니더라도 뼈라도 넣어 끊이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뼈에 고기가 붙어 있는 날이면 그보다 큰 횡재가 없었다.

종로나 광화문에서 이렇게 시작된 것이 감자탕집이다. 당시에 감자탕에는 감자가 주였고 돼지고기 뼈는 적었다. 주로 감자가 많이 나는 여름철에 즐겨 먹었고 겨울이나 봄에는 쉽게 먹을 수 없었다. 반면에 감자는 철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비싸지고 겨울에는 더군다나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집에는 감자탕에 감자가 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돼지고기가 수입되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우리나라 음식 이름은 항상 주재료를 기반으로 붙인다. 주재료의 변화에 뼈다귀탕이라고 불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습에 따라 감자탕이라 불리고 있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