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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1980년대 위성중계가 보편화될 때 권투나 A매치 축구 중계를 잘하는 분이 있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C 아나운서였다.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 대표팀이 세계 4강에 오를 때 그분의 흥분된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후배 아나운서들에게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써야 한다고 많이 하셨던, 존경받은 분이었다고 한다. 그분은 감자탕 이름이 한자어 ‘감저탕(甘猪湯)’에서 온 것이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존경받은 유명한 분의 말이라 그 영향력이 컸다.
또 몇 년 전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소개하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느 외국 군인이 감자탕을 좋아한다면서 감자가 없는데 왜 감자탕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감자탕에 들어가는 돼지고기 부위 일부가 한자로 ‘감자’라고 불려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든 사전을 동원해도 감자라는 부위가 돼지 뼈 어느 부위인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어머니들이 감자탕을 만들어 팔았을 때 감자라는 부위를 과연 알았을까? 말이 되지 않는다.
1970년대 초반에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많아 서울 인구가 급증했다. 대부분 고기를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없었다. 그때 돈 없는 사람들이 감자탕을 맛있게 사 먹었다. 하지 때가 되면 감자가 나온다. 묵은김치에 주로 감자를 넣고 비록 살코기는 아니더라도 뼈라도 넣어 끊이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뼈에 고기가 붙어 있는 날이면 그보다 큰 횡재가 없었다.
종로나 광화문에서 이렇게 시작된 것이 감자탕집이다. 당시에 감자탕에는 감자가 주였고 돼지고기 뼈는 적었다. 주로 감자가 많이 나는 여름철에 즐겨 먹었고 겨울이나 봄에는 쉽게 먹을 수 없었다. 반면에 감자는 철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비싸지고 겨울에는 더군다나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집에는 감자탕에 감자가 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돼지고기가 수입되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우리나라 음식 이름은 항상 주재료를 기반으로 붙인다. 주재료의 변화에 뼈다귀탕이라고 불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습에 따라 감자탕이라 불리고 있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