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안 오래된 오동나무 한 그루,
우뚝한 줄기는 구름까지 닿을 듯.
가지는 남북에서 날아드는 새들을 맞고,
잎사귀는 오가는 바람을 배웅하네.
(庭除一古桐, 聳幹入雲中. 枝迎南北鳥, 葉送往來風.)
―‘우물가 오동나무(정오음·井梧吟)’ 설도(薛濤·768∼832)
이 소박한 풍경화 속에는 억울한 사연이 하나 숨겨져 있다. 시는 아버지가 앞 2구를 읊고 딸 설도가 뒤를 이어 완성했다고 한다. 정원의 나무를 바라보며 부녀 간에 흔하게 오갈 법한 대화이지만 놀라운 건 당시 설도의 나이가 여덟, 아홉이었다는 것. 나이에 비해 시적 순발력은 가히 천재적이다. 아버지는 우람한 줄기에 감탄을 보냈고 딸은 그에 호응하여 가지와 잎사귀 묘사로 시를 마무리한다.
이 일화를 기록한 건 송대 장연(章淵)의 ‘고간췌필(槁簡贅筆)’. 소설, 야사, 풍문 따위가 혼재되어 있어서 진실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시 이해에 다소 도움은 될지언정 시인의 재능을 왜곡할 수도 있는 누명은 해명되어야겠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