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뉴시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6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과의 오랜 전쟁과 봉쇄로 인해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관련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앞서 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를 “미국이 장악(take over)하고 소유하겠다”면서 “가자지구 주민의 이주는 ‘영구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지만 오히려 그의 지휘를 받는 외교수장은 장기 이주 가능성을 일축하며 다소 모순되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첫 가자지구 발언 이후 그와 주요 정부 인사들 간 메시지가 충돌하는 양상은 이어지고 있다. 이에 가자지구 발언 논란이 커지면서 국내외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 인사들은 이를 수습하려고 애쓰는데 정작 트럼프 대통령만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고수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특유의 ‘매드맨(madman·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하는 거란 평가도 있다.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판을 정신없이 흔들어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중동의 화약고인 가자지구 문제를 풀어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4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가자 주민 약 214만 명을 중동의 다른 나라로 이주시킨 뒤 미국이 장기간 가자지구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가자지구를 “중동의 ‘리비에라’(Riviera·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의 지중해 연안 휴양지)”로 만들겠다는 의지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루비오 장관은 그 하루 뒤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재건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곳에서 거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이것은 자연재해와 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같은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은 주민들이 임시로 가자지구 밖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이주가 이뤄지더라도 장기적인 조치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다시 하루 뒤인 6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전쟁이 끝나면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에 의해 미국으로 넘겨질 것”이라면서 “가자 주민이 새롭고 현대적인 주택을 갖춘 안전하고 아름다운 지역 사회에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자 주민들의 이주 기간 관련해 앞서 루비오 장관 등의 발언과는 다른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보란 듯 다시 올린 것. 그러자 도미니카 공화국을 방문 중인 루비오 장관은 이날 다시 가자 주민들의 이동은 “임시” 조치임을 재차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초기 발언을 철회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자신의 행정부 관리들이 발언을 완화하려고 시도하자 다시 뒤집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가자 지구에 미군을 파병할 가능성을 두고도 트럼프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 간 발언은 다소 엇갈렸다. 당초 4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을 보내겠느냐는 질문에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후 루비오 장관이나 레빗 대변인 등은 미군 투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거듭 내비친 것.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6일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선 “미군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한발 물러섰다.
● “‘가자지구 장악’ 트럼프 발언, 이-하마스 휴전안 어렵게해”
이런 가운데, 가자지구 장악 등을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가자지구에서의 휴전안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발표로 인해 2단계 휴전안은 난항에 봉착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1단계 휴전안은 지난달 이미 시작돼 2단계로 이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여파로 하마스가 반발할 가능성이 커지는 등 악영향을 줄 변수가 커졌다는 것이다. 휴전안 1단계는 6주간 전투 중단과 인질 일부 석방 내용 등을 담고 있다. 2단계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완전 철수와 인질 전원 석방, 3단계는 가자지구 재건 등이 주된 내용이다.
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