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무성이 10일 발표한 지난해 국제수지 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29조2615억 엔(약 280조 원)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거뒀다. 미 달러화로 환산하면 1926억 달러다. 비교 가능 통계가 있는 1985년 이래 사상 최대 규모다.
한국이 지난해 사상 최대 수출(6838억 달러)을 하면서 일본 추월을 눈앞에 뒀다고 했지만, 국가 경제 전체의 대차대조표라 할 수 있는 경상수지는 여전히 일본이 한국보다 2배 이상으로 앞선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액은 990억4000만 달러였다.
일본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에 달한 건 해외 투자로 벌어들인 돈이 많아서다. 일본의 해외 투자에 따른 배당 이자 등 1차 소득수지(40조4305억엔)는 전년보다 4조 엔가량 증가했다. 과거 일본은 제조업 강국으로 한국처럼 수출로 돈을 버는 나라였지만, 이제는 무역수지는 소폭 적자가 나더라도 막대한 해외 투자 이익이 이를 만회하고도 남는 수준인 것이다.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 증가도 일본 경상수지 흑자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일본 여행수지 흑자액(5조8973억 엔)은 전년보다 무려 62.4% 증가하며 역대 최대였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3686만 명) 중 1위가 한국(882만 명)이었다. 한국인들이 지난해 일본에서 쓴 돈도 9632억 엔으로 우리 돈으로 약 9조 원에 달한다. 다만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료 등이 포함된 이른바 ‘디지털 수지’ 적자로 서비스 수지는 소폭 적자였다.
엔저에 힘입은 수출 호조세도 경상수지 흑자에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 일본 무역수지는 3조8990억 엔 적자였지만, 수출은 전년 대비 4.5% 증가했지만, 수입은 40.0% 줄었다. 엔저 현상으로 자동차, 반도체 소재 부품 등의 수출이 증가하는 동안, 수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유는 가격이 소폭 낮아졌다.
일각에선, 일본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일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적자 해소 압력의 선제 조치로 1조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를 약속하는 등 미국의 통상 압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