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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머리 휘날리며 런웨이… “은퇴 후 모델 설레요”

입력 | 2025-03-13 03:00:00

서울 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서
만 60세 이상 ‘모델 양성 과정’
프로그램 종료 후 일자리 연계
조향사-경비원 등 취업 활동 지원… 창업 희망자에 실무 프로그램도



11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서울시50플러스 동부캠퍼스 2층 강당에서 ‘서울 시니어모델 양성과정’에 선발된 참가자들이 벽에 몸을 기대 바른 자세를 연습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어깨를 활짝 펴시고 머리부터 발뒤꿈치까지 벽에 딱 붙여 주세요. 고개는 살짝 내리시고요.”

11일 오전 서울 광진구 자양동 서울시50플러스 동부캠퍼스 2층 강당. 강사의 지시에 검은색 계열 옷을 입은 참가자 30명이 강당 벽면에 몸을 밀착했다. 일렬로 늘어선 이들 중에는 하얗게 센 머리에 베레모를 쓰거나 스카프를 두른 사람도 보였다.

‘벽 자세’를 한 지 약 10분이 지나자 일부는 얼굴이 빨개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강사가 시간 종료를 알리자 참가자들은 벽에서 몸을 떼고 “생각보다 쉽지 않다”며 숨을 골랐다.

● 인생 2막 ‘시니어 모델’ 수업

이날 첫 수업인 ‘바른자세 기초 트레이닝’에 참가한 이들은 서울시가 만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뽑은 서울 시니어모델 양성 과정 수강생이다. 1월 서울시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맞아 일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 60세 이상 시민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 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의 문을 열었다.

4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시니어 모델’이 되고자 모인 이들은 기존에 모델 경력이 있거나 패션 분야 일을 하지 않은 일반 수강생이 다수였다. 의료 분야 공공기관에서 30년 넘게 일했다는 최순성 씨(64)는 “은퇴 후 인생 2막의 삶을 좀 더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가고 싶어 그동안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35년 2개월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전직·휴직을 권고 받고 상심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어린 시절 꿈에 도전하게 됐다는 이도 있었다. 주은영 씨(60)는 “일을 하며 평생을 시계추처럼 회사와 집만 다녔는데 딸아이가 ‘이제 엄마 인생 살아’라며 이 수업을 추천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델 관련 경험이 없어 기대하지 않았는데 합격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아 울었다. 어렸을 적 잠시 꿈꿨던 일에 도전하고 있어 요즘은 하루하루가 설렌다”라고 덧붙였다.

최고령 참가자는 72세의 김은숙 씨였다. 김 씨는 60세에 걸렸던 대장암 완치 후 건강과 삶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모델 수업을 통해 바른 자세, 워킹, 포즈를 배워 하이힐을 신고 런웨이에 설 날이 기대된다”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시니어모델 양성 과정 수업은 사단법인 시니어패션모델협회(SFMA)와 함께 5월 말까지 매주 화·목요일 22회 진행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패션쇼로 진행되는 마지막 수업이 끝나게 되면 실제 시니어 모델 수요가 있는 일자리와도 연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교육-취업 연계… 현장 체험도

서울 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에서는 교육과 취업을 연계하는 ‘취업 훈련’과 현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는 ‘서울형 시니어 인턴십’을 운영한다. 취업 훈련 프로그램에서는 시니어 모델을 비롯해 조향사, 도보 배송원, 경비원 양성 과정도 운영한다. 창업을 희망하는 시니어를 위한 현장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유형별 교육과정을 온·오프라인으로 제공하며 올해 총 2200명을 모집한다.

시니어 인턴십은 기업 현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참여자는 월 25시간 또는 57시간씩 최대 3개월간 활동하며, 활동비와 실습비를 지원받는다. 이 외에도 취업을 준비 중인 시니어라면 직무·산업별 스터디, 개인 맞춤형 컨설팅 등을 지원하는 ‘챌린저스 클럽’에도 참여할 수 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