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제국은 정신의 제국이다.”
“The empires of the future are the empires of the mind.”
2025년 2월 28일 세계에서 제국은 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쫓아낼 때다.
제국을 지탱하는 힘은 크게 재력, 무력, 매력이다. 재력은 세계 경제 체제를 이끌어 가는 힘, 곧 경제력이다. 무력은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힘, 즉 군사력이다. 매력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동경(憧憬)하도록 만드는 힘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제국 문턱까지는 갈 수 있다. 그러나 매력이 없다면 제국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저 강대국에 그칠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백악관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초대한 뒤 기자와 카메라 앞에서 설전을 벌였다. X 캡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제국으로 만든 것도 압도적인 하드파워(hard power)만이 아니다. 지구에 사는 누구라도 ‘그곳에 가고 싶다’ ‘그곳에서 살아 보고 싶다’고 바라도록 만든 매력이 주효했다. 어렸을 적 TV 드라마 ‘전격 Z 작전’의 말하는 자동차 ‘키트’에 반했고, 할리우드를 비롯한 대중문화의 화려함에 푹 빠졌다. 캐딜락은 어떻고 링컨 컨티넨탈은 또 어땠나.
미국 국제정치학계 거두인 조셉 나이 전 하버드대 교수는 30여 년 전, 군사력과 경제력은 줄어들지만 소프트파워(soft power)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미국의 쇠퇴를 말하기는 이르다고 주장했다. 소프트파워, 다시 말해 매력이 하드파워의 부족한 자리를 충분히 메울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2025년 2월 28일 트럼프 대통령의 문전박대는 어쩌면 지독한 현실주의의 발로였을 수도 있다. 현 상태에서 러시아를 영토적으로 더 밀어붙이다가는 핵전쟁을 부를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순간, 강대국의 침략에 자유를 빼앗긴 약소국 수장이 얼굴을 붉히며 백악관 오벌오피스를 빠져나온 바로 그 순간, 그나마 남았던 미국에 대한 세계인의 부러움 한 조각마저 사라졌다고 느꼈다. 동경이 사라지는 순간, 제국의 황혼은 시작된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9월 6일 하버드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마이크 앞에 섰다. 처칠은 앞으로는 미국의 시대임을 예감한 듯 “미래의 제국은 정신의 제국”이라고 말했다. 과거 제국처럼 영토를 점령하고 자원을 수탈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결과물로 세계를 이끌어 가는 제국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불행히도 처칠은 82년 앞을 내다보지는 못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