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鍾求기자」 어느 동화도 이같은 신데렐라는 그려내지 못했다. 45세된 노처녀와 열살 아래 총각의 결혼. 그것도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처녀가 삼성전자 수출전략팀의 엘리트 총각사원의 프로포즈를 받아 결혼에 골인하는 해피엔딩을.
해직기자 출신의 소설가 안혜성씨(48)는 자신들의 사랑이야기를 「성경속의 사랑얘기, 우리들의 사랑얘기」로 최근 묶어 냈다. 독실한 신자인 이들은 서울 소망교회 교사수련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1년만인 93년 결혼했다.
『그때 하염없이 울었어요. 「고맙고 서러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가슴저미던 사랑을 하느님의 사랑, 성경속의 사랑으로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당시 이 소식은 그를 알던 언론계 문화계 주한외교단 인사들에게 엄청난 화제를 불렀다. 결혼식날 소망교회는 내로라하는 인물들의 축하와 호기심 그리고 부러움으로 가득찼었다.
안씨는 어릴 때부터 독신으로 살겠다고 결심했다. 한국전쟁 중 아내와 두 딸을 버리고 이념을 택한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었다. 남자처럼 억세게 자랐다. 왼쪽 다리에 대한 상실감을 만회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단련했다.
『오직 나로 인해서만 기뻐할 것이고 나로 인해서만 슬퍼할 것이며 결코 다른 사람이 나를 슬프게 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29세에 영자신문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차장에 오를 만큼 독하게 살았다.
80년 광주항쟁은 그녀에게 눈뜸과 고통을 함께 가져다 주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아픔에 생전 처음 눈물을 흘렸고 이를 알리겠다고 나섰다. 그리곤 그해 여름 해직됐다. 실업자로 지내며 광주항쟁과 해직의 고통을 「베로니카의 노래」 「불꽃춤」 등 소설과 수필집으로 써냈다. 82년부터 미국문화원에 근무하며 방송 교회 대학에서 강연하랴 번역하랴 글쓰랴 정신없이 10년 가까이를 보냈다.
어느새 중년이었다. 언감 결혼은 생각지도 않았을 때 안순홍씨(38)가 주위의 편견을 뿌리치고 「내사랑」으로 달려왔다.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사랑의 소중함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10년 연하의 남편을 둔 「능력있는 여자」의 인생과 사랑이야기는 4년만에 책속에서 다시 불꽃을 태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