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로 인한 분쟁이 날로 증가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의료분쟁조정법을 제정하려고 법안을 제안했다. 의료과실로 인한 피해를 신속 공정하게 구제하고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법제정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법안을 검토해 보면 의료소비자보다 의료종사자의 입장을 지나치게 두둔해 형평성을 잃은 내용이 많다.
우선 의료분쟁시의 의료기관 점거나 의료관계자에 대한 폭행 협박에 대해 형법의 형벌보다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은 점이다. 반면 환자사망시에는 의료인에게 형사처벌 특례를 지나치게 관대히 인정하고 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제도를 모방한 듯하나 의료사고는 교통사고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의료인의 입장을 두둔하고 소비자의 권리 구제활동을 제한하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또 하나는 조정전치주의를 두어 의료분쟁조정위원회를 거치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마저 제한해 놓았다. 물론 조정제도는 시간과 비용면에서 소송보다 유리하다는 장점도 많아 적극 활용되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의료사고가 나도 60∼90일씩이나 소송을 직접 제기하지 못하게 조정제도로 제한한다면 신속한 권리구제를 막는 부작용이 생긴다.
이같은 문제점을 감안해 몇가지 제안하고 싶다. 첫째, 의료소비자의 난동에 대한 처벌은 현행 형법만으로도 충분하므로 가중처벌조항은 삭제하고 조정전치주의 또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철폐돼야 마땅하다. 둘째, 의료용구로 인한 피해는 결함만 확인되면 쉽게 배상받을 수 있도록 무과실책임으로 수정해야 한다. 세계적으로도 제조물의 결함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볼 경우 제조업자의 과실여부를 묻지 않고 책임을 지우는 제조물책임법을 제정 시행하는 추세다. 셋째, 의료분쟁에서 의료인이 허위자료를 제출하거나 허위진술할
경우 소비자의 주장을 입증한 것으로 추정하는 규정을 두어 민사증거법상 불이익을 줌으로써 진실한 정보공개를 보장해야 한다. 소비자가 구제받는데 가장 어려운 점이 의료인의 과실입증인데 현실적으로 입증을 위한 모든 정보를 의료종사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새로 도입된 의료배상공제제도는 배상액이 지나치게 낮아 유명무실하게 되거나 소비자가 소송을 통한 구제를 요구할 경우 실효성이 없게 되므로 실질적인 배상이 이뤄지도록 운영돼야 바람직하다.최 병 록<소보원 법제연구3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