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炳奇·孔鍾植 기자」
「골프부킹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총성없는 전쟁」이 단 한차례의 휴전도 없이 매주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골프부킹전쟁에는 주말과 주중이 따로 없다. 주말은 물론이고 주중에도 부킹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어떤 이는 골프를 「금프」라고 부르겠는가. 부킹이 어려워 필드에 한번 나가는 것이 금을 캐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을 빗댄 말이다.
골프부킹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골프를 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은 폭발적으로 늘어 넘쳐 나는데 비해 골프장 수가 턱없이 모자라는데 있다.
▼ 골프장 회원권 남발 ▼
이와 함께 골프장업주들이 수용능력보다 훨씬 많은 수의 회원을 모집, 폭리를 취한데도 주된 원인이 있다. 각 골프장들은 엄청나게 비싼 값에 회원권(멤버십)을 남발하고 회원권을 소유한 회원들에 한해서만 전화로 부킹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따라서 각 골프장마다 항상 전화로 부킹을 하려는 회원들로 「박이 터지는」 현상이 되풀이 된다.
실제 주말골프부킹을 받는 요일(골프장마다 다르나 대개 화요일)이 되면 난리가 난다. 골퍼들은 자신이 회원권을 갖고 있는 골프장의 예약전화번호를 돌리느라 전화기를 붙잡고 씨름을 벌인다.
부킹전쟁의 주무대는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일대에 있는 50여개의 골프장. 이 바람에 이들 골프장의 부킹전화가 많이 가입된 전화국들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전화가 몰려 마비상태가 된다. 일반 가입자의 통화성공률이 평소의 절반이하로 뚝 떨어지는 것이다.
이같은 경쟁을 뚫고 부킹을 하기 위해 어떤 이는 전화가 연결될 때까지 자동으로 되풀이해 다이얼링해주는 이른바 「부킹전화」를 구입하기도 하고 어떤 기업인은 부킹만 전담하는 「부킹담당비서」를 두기도 한다.
그러나 골프부킹난은 「부킹전화」나 「부킹전담비서」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전화를 걸어 부킹에 성공하기란 복권당첨처럼 확률이 낮은 실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억원짜리 회원권을 갖고 있으면서도 주말에 부킹을 성공시키는 비율이 1년에 한두차례에 지나지 않는 웃지못할 일들이 비일비재다.
이처럼 부킹난이 계속되자 지난 94년 태광CC(컨트리클럽)의 회원들이 집단적으로 골프장을 상대로 소송을 내기까지 했다.
이런 가운데 주말부킹전쟁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일부 비회원들의 「끼어들기 부킹」.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지만 주말골프부킹은 이 나라에서 힘깨나 쓴다는 파워그룹들의 힘겨루기가 되고 있다. 골프부킹이 전화로 이뤄지는만큼 골프장업주측은 마음만 먹으면 사실 회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예약시간 일부를 몰래 빼내 비회원에게 나눠 줄 수 있다. 이를 알고 권력기관 등이 골프장측에 「부킹부탁」을 하는 것이다.
골프장경영 등에서 많은 약점을 안고 있는 골프장측은 힘있는 기관 등에서 해오는 부킹부탁을 무시할 수 없다. 골프장들은 부킹부탁을 해오는 기관들의 파워나 골프장과의 친소 또는 이해관계 등을 따져 미리 빼돌려 놓은 부킹시간을 나눠준다.자연스럽게 「끗발 순」으로 부킹청탁이 먹혀 들게 되는 것이다.
골프장측으로서도 부킹부탁을 들어주어 크게 나쁠 이유가 없다. 공짜로 골프를 치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회원보다 2배나 되는 그린피를 받는 비회원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골프장수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끼어들기 부킹」의 단골손님은 주로 골프장이 자리잡고 있는 지역의 도청 군청 검찰 경찰 국세청 언론 금융기관 등 소위 「힘있는」 기관들.
일요일인 지난달 27일 서울 근교의 한 골프장. 36홀 규모인 이 골프장에는 이날 모두 1백40개팀이 출장, 골프를 즐겼다.
골프장측은 「골프장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날 「끼어들기 부킹」으로 골프를 친 팀이 모두 18개팀이라고 밝혔다. 1개팀을 4명으로 계산하면 모두 72명이 회원권을 가진 회원들을 제치고 골프를 즐긴 셈.
골프장측에 따르면 이들 18개팀에 대한 부킹을 부탁해 온 기관들은 △경기도청 2개팀 △용인시 2개팀 △국세청 2개팀 △언론사 2개팀 △골프장의 주거래은행 5개팀 △용인경찰서 1개팀 △국가안전기획부 1개팀 △골프장의 계열회사 접대용 3개팀이었다.
골프장측이 부킹청탁을 해 온 기관의 이름과 부탁한 팀 수를 공개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물론 부킹부탁을 한 기관측이 모두 직접 골프를 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이들 기관중에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골프장에 부킹부탁을 했을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골프장의 부킹 총책임자인 K씨는 『현재 골프장에 관련된 법률만도 1백개가 넘고 결국 밉게 보이면 안되는 관공서가 한두개가 아니다』며 『이같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골프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부킹청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 놓았다.
K씨는 또 이밖에 『한전 소방서 전화국 등도 자주 부킹부탁을 해 와 어쩔 수 없이 들어주고 있다』며 『이번에는 빠졌지만 검찰에서 오는 부탁이 제일 무시할 수 없는 청탁』이라고 밝혔다.
▼ 경찰선 순찰차 위력시위 ▼
만약 골프장측이 이들 기관의 부킹부탁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을 경우 골프장측이 당하는 고초도 가지가지이다. 행정관서는 골프장의 위생지도를 비롯해 세금부과 등 모든 문제에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부킹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직접적인 보복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
또 전화국의 경우도 가끔 부킹을 해주지 않으면 고장전화신고를 해도 일부러 수리를 늦추는 등 딴전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고 골프관계자들의 전했다. 경찰의 경우는 골프장앞에 순찰차를 배치해 골프를 친 뒤 귀가하는 골퍼들을 상대로 음주단속을 하는 등 위력시위를 벌인다는 것.
부킹이 어렵다보니 갖가지 부정도 성행한다. 일부 회원들은 되지도 않을 전화부킹을 포기하고 대신 골프장 직원들을 매수해 손쉽게 부킹을 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또 골프장 일부직원들도 매주 부킹시간을 빼낸 뒤 평소 거래해온 회원에게 넘겨주고 나중에 「수금」을 하기도 한다.
골프부킹난이 심각해지면서 「골프부킹권」이 물건처럼 돈을 주고 거래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부킹권시장」의 주요공급선은 골프부킹브로커. 고객들은 골프접대를 해야 하는 사업가들이나 영업담당자들이다.
평소 골프브로커들을 자주 이용하는 金모씨(33·K사영업담당과장)는 『이들에게 가면 언제든지 50만원에 골프부킹권을 살 수 있다』면서 『이들은 보통 골프장 경기과 담당자에게 한달에 1백만원씩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하는데 한달에 2팀 정도 거래하면 뇌물로 투자한 액수를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골프잡지들의 경우 골프장측으로부터 얻어낸 부킹권을 광고주들에게 넘겨주고 광고를 유치하기도 한다. 골프전문잡지의 한 관계자는 『1주일에 2팀정도의 부킹권을 따내 이를 광고와 바꾸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송추클럽 전사장 安三德씨는 『과도한 회원숫자, 권력기관의 청탁, 골프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없어지지 않는 한 부킹전쟁은 끝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