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온 지도 2년이 흘렀다. 처음 독일사람들을 대하곤 무뚝뚝하고 인사도 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인상이 나의 선입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노버 근처의 소도시에 갔을 때였다. 초행길이라 지나가는 노부부의 자동차를 붙잡고 지도를 펴보이며 물었다. 그들은 차에서 내리더니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던지 차로 앞장서 인도할테니 뒤따라오라고 했다. 앞차를 보며 20분이나 따라간 끝에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되돌아갔으니 시간을 귀중히 여기는 독일인에게 40분이란 얼마나 엄청난 시간인가.
독일사람들은 인내심과 국가에 대한 의무감이 탁월하다. 지난 연말 베를린에서 브레멘까지 혼자 기차여행을 한 적이 있다. 굉장히 추운 날씨였는데 설상가상으로 기차의 난방장치까지 고장이 났다. 안내방송을 들은 승객들은 하나둘씩 일어나 선반에 올려놓은 두꺼운 코트를 입더니 다시 책을 펴들었다. 누구 한사람 승무원에게 항의를 한다든지 불평을 얘기하지 않았다.
급행열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차가 종착역의 차량대기로 30분 정도 연착할 예정이니 차내에서 기다리든지 아니면 지금 정차하는 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해주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승객들은 역시 아무런 불평없이 지하철로 갈아타는게 아닌가.
이들의 인내심과 침착성 그리고 국가에 대한 책임의식 등이 세계 제3의 경제대국 통일독일을 있게 한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서 가장 불평을 많이 하는 국민으로 유수의 항공사들은 우리를 지목한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가끔씩 발생하는 지하철 비행기 등의 연착에 따른 환불소동 농성 유리창파손 등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독일에서의 작지만 소중한 기억들을 되새기게 된다.(박영복: 베를린 무역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