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모두가 어린이의 교사다

  • 입력 1996년 11월 1일 20시 23분


가정보다 나은 학교가 없고 부모보다 더 큰 교사도 없다. 특히 인성교육은 가정 및 사회에서 담당하는 몫이 크다. 하지만 핵가족으로 바뀌고 결손가정이 늘어나면서 고독한 하숙집으로 전락하고 있는 게 오늘의 가정이다. 도시에는 맞벌이부부가 늘어나고 농촌에서도 여성들이 농사일에 매달리다 보면 가정교육은 고사하고 양육조차 힘겨운 실정이다. 이제는 주변의 어린이가 모두 내 자녀인 시대다. 「공자님 말씀」 같은 되뇜이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 청소년들에게는 어른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모델이 된다. 어떤 언동으로 어린이 청소년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수범을 보일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하루 생활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들 내 아이가 항상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생활하자. 요즘의 어린이 청소년 비행은 당연히 기성세대 탓이다. 사회는 온통 추악한 일들로 가득차 전혀 본받을 만한 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사회가 어린이들의 인성교육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망치고 있다. 이제 「남녀칠세 부동석」이란 말은 어색한 속어가 되고말았다. 거리에 나서면 여기가 서양인지 동양인지도 구별하기 힘들 정도다. 짚신을 고무신으로, 또 구두로 바꿔 신었다고 발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늘씬한 키에 각선미 좋은 금발의 아가씨들이 가슴 훤히 비치고 배꼽 보이는 셔츠에다 초미니스커트나 팬티같은 반바지를 입고 뚝뚝 하이힐 소리에 엉덩이를 흔들어가며 활보하는 거리패션도 별난 세상의 구경거리다. 어린이 청소년들이 이 광경을 보고 듣고 또 따라 거닐면서 어떤 충동을 느끼고, 어떤 욕구를 가지며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속에서 학교가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기능할 수 있겠는가. 두려움이 앞설 뿐이다. 어린이들에게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하자면 교육이 바로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가 함께 나서야만 가능하다. 가정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든 직장이든 어디서건 항상 내 자녀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현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사회의 비인간화 현상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이대로는 우리에게 결코 미래가 없다. 달라져야 한다. 언제 어디서건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바른 모델」이 제시된다면 서로 믿고 신바람나는 밝은 사회는 보장된다. 한점 부끄럼 없는 수범생활의 실천에 내가 먼저 앞장선다는 각오를 다지자. <남상은: 정읍서초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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