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重炫 기자」 『하루중 남편과 지내는 시간보다 재봉틀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요』
바지 단 하나를 내는데도 세탁소를 찾는 주부들이 많은 요즘 남창숙씨(54·경기 고양시 소만마을)는 「별난 주부」에 속한다.
남편 이예희씨(62·목재수입업)를 출근시킨 뒤 청소 등 집안일을 마무리하면 남씨는 손때묻은 손재봉틀 앞에 앉는다. 이때부터 6∼7시간씩 재봉틀과 씨름하는 것이 남씨의 하루일과.
『친정어머니는 제가 어릴 때 바늘에 손도 못대게 하셨어요. 당신처럼 바느질이나 하며 살지말라는 당부셨죠』 이때문에 남씨는 「바늘에 실한번 꿰어보지 않고」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다. 혼수로 어머니가 장만해준 일제 「미싱」은 20년이상 귀찮은 짐이 되어 안방 한편만 차지했다.
바느질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89년. 3남매를 키우느라 줄달음치듯 살림만 했던 남씨는 막내를 대학에 입학시킨 뒤 적적함에 뭐라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서울 경복궁 민속박물관에서 고 정인보선생의 맏딸이자 침선장무형문화재인 정정완씨의 한복제작 강좌를 찾게 됐다. 『바로 이거구나』라는 느낌이 든 남씨는 정씨의 돈암동집 등을 찾아다니며 3년을 사사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바느질 귀신」이란 별명을 얻게된 것도 이 무렵. 사회활동이 많은 대학동기들 사이에서 유독 집을 지키고 앉아 재봉틀과 씨름했기 때문이었다.
『무료함을 달래는데 한땀 한땀 바느질해가는 것만한 게 없어요. 마음가짐이 흐트러지면 재봉선도 비뚤어지죠. 나중에는 재봉틀의 바늘이나 노루발과도 이야기를 나누게 돼요』 「득도의 경지」까지 느껴지는 남씨의 이야기. 올해로 바느질경력 7년째가 되는 남씨의 「작품」은 수백점에 이른다. 일가친척과 친구들의 핸드백속에서 남씨가 만든 비단지갑이 보물이 된지 오래다.
지난해말 외동딸 현정씨(28)의 결혼때는 딸의 원삼 족두리와 사위의 관복 등 폐백옷을 직접 만들었다. 『바느질 안하고 살테니 필요없다』는 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씨는 결혼때 「너도 내나이 돼봐라」는 흐뭇한 웃음과 함께 혼수에 손재봉틀을 슬쩍 끼워넣었다.
보름전 현정씨가 아들을 낳아 할머니가 된 남씨는 이제 첫손자의 돌옷을 짓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