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한국형 부패 시스템

  • 입력 1996년 11월 4일 20시 27분


전직 국방장관의 독직에 이어 터진 버스비리 사건을 계기로 관가엔 또 한차례 숙정바람이 불어닥칠 모양이다. 공직사회는 그런 낌새에 벌써부터 숨을 죽이고 몸조심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을 해도 사정당국이 작심을 하고 나서서 뒤지기 시작하면 누구든 그물망에 걸려들게 되어 있다. 그게 이권과 업자가 한통속이 되어 돌아가는 한국 사회의 서글픈 풍토다. 과거의 수많은 뇌물비리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사건도 아마 가는 길이 뻔할 것이다. ▼ 司正할수록 더 노골적 ▼ 얼마 안있어 상당수의 부패한 공직자들이 직장에서 추방되고 비리의 전모가 밝혀지면 개선대책이 나오는 게 순서다. 그러고 조금 지나면 사람들의 흥분도 가라앉고 사회시스템은 아무일 없었던 것 처럼 일상(日常)으로 돌아간다. 이게 대체적인 코스다. 돌이켜 보라. 5.16 쿠데타 이후 3공과 5공, 6공을 거치며 수백번의 정화운동으로 수많은 비리 공직자가 쫓겨났지만 달라진 것이 있는가. 오히려 숙정을 하면 할수록 부패 시스템은 더욱 견고해졌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 모른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혁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온 통치자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비리의 척결을 벼르고 있다지만 그걸로 우리 사회가 깨끗해질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버스비리가 한창 터져 나올 때 만난 중소기업인 A씨는 이렇게 흥분했다. 『개혁드라이브가 걸렸던 문민정부 초기 공직사회가 맑아지는 것을 보고 박수를 쳤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요새는 그전보다 더 노골적이고 심해졌다. 나같은 업자한테 도장 한번 찍을 때마다 10만원씩 받아먹는 게 도대체 어느 나라 풍습인가』 그러면서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이렇다. A씨는 모피 원단을 수입, 코트로 가공해서 전량을 수출하는데 수출때마다 일일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직후엔 검사현장에서 봉투가 싹 사라져 개혁을 실감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한달이 채안돼 봉투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A씨는 『그래도 세상이 변했는데』하면서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이젠 검사를 제대로 하겠다며 플라스틱 자를 들고나와 모피코트를 센티미터까지 재며 괴롭혔다. 물품수속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어떤 것은 몇번씩 퇴짜를 맞아 납기를 한달 지체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견딜 수가 없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시간만 허비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돈을 건네는 게 훨씬 싸게 먹히고 일처리가 빠르다』 A씨의 냉소섞인 말이다. 어찌 A씨의 경우뿐이겠는가. 경쟁입찰이란 이름밑에서 담합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차량 검사를 받으러 가도 뒷거래가 없으면 하루 종일을 기다려야 한다. 요즘 차들은 성능이 워낙 좋아 차량검사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한 10년은 끄떡없이 달릴 수 있다. 그런 것을 왜 정부가 2년마다 일일이 보살펴 주어야 하는가. ▼ 이권구조 무력화 시급 ▼ 규제를 아무리 완화해도 헛수고다. 관조직이 기득권에 매달려 있는 한 어떤 명분을 동원해서라도 규제의 인허가권은 정당화되고 만다. 관청뿐만 아니라 요즘엔 민간의 부패도 심각하다.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기업담당자간 수백만원, 수천만원이 예사로 오간다고 한다. 총체적인 부패의 악순환이다. 부패가 심하면 국민경제가 황폐화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이권구조를 무력화 시키고 부패의 고리를 깨부수지 않는 한 한국경제는 희망이 없다. 李 寅 吉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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