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14〉
애리가 돌아온다는 말을 현석은 담담하게 듣는다.
애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색하긴 한 모양이다. 자기의 위상을 애리의 지도 교수로만 제한시켜 대꾸한다.
『벌써 공부를 다 끝낸 건가?』
『일년 남았는데 그만두겠대. 불어 실력이 짧아서 공부를 따라잡기 벅찬 모양이야』
애리의 편지에는 교수가 패션 경향이나 디자인 컨셉트에 대해 설명하면 그것을 한국말로 정신없이 받아적어 집에 와서 사전을 뒤적거리면서 공부하곤 했다고 씌어있었다.
『…그리고 말야. 디자인 공부에 유머감각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걸 처음 알았어. 한국에서 응용미술과 나온 친구애도 별 수 없어. 석고데생으로 대학 들어가서 사년 내내 포스터만 그리다가 졸업했는데 자유로운 발상이란 게 하루 아침에 되겠어?』
하지만 애리가 파리에 빨리 싫증을 낸 것은 공부보다는 「다른 삶」을 향해서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걔가나오면당분간이아파트에같이있을것같아』
『불편하겠군』
『글쎄, 누구하고 같이 살아본 지 오래 되긴 했지만…』
이혼을 한 지 벌써 칠년이 되었나? 아니 팔년? 나는 나에게 닥쳐오는 거부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빨리 적응하는 편이었다. 상현과의 결혼에도 적응했지만 이혼에도 오래지 않아 그럭저럭 적응을 했다. 애리와 한집에서 사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일 바에야 쉽게 생각하고 싶었다.
『남자하고 사는 것과는 다르겠지 뭐. 어떻게 하면 침대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긴장할 필요도 없고』
『내가 불편하겠다는 얘기야』
애리가 있을 동안 현석이 이 집에 드나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현석이 아니라 어떤 애인도 다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이제 걔가 한국 나와서 나하고 같이 살게 되면, 이러는 거 아냐? 딩동 벨소리가 난다. 누구세요, 하고 나가는 동생. 문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꿈에도 잊지 못할 첫사랑의 남자가 서 있다. 일단 놀라고, 다음 단계로 기뻐 날뛰려는 순간, 뒤에서 들리는 언니의 목소리. 얘, 비켜. 내 손님이야. 어때? 꼭 영화 같겠다』
내가 지나치게 재미있어 하는 이유를 안다는 듯이 현석이 내 뺨을 가볍게 건드리며 말한다.
『자기 입으로 말해버리면 좀 괜찮아져? 충격완화장치. 그것도 역시 비겁이라는 증세야』
<글 : 은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