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과 외설의 구분은 독자에게 맡기자
「아마티스타」 「아나이스 닌의 에로티카」를 펴낸 열음사가 출판사 등록취소 명령을 받았다.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침해했다는 얘기다.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펴낸 김영사는 외설파문이 일자 자진 회수해 폐기처분했다. 작가를 사법처리할 기미도 있다.
도대체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는 잣대는 뭔가. 주관적인 판단으로 음란물 운운하며 구세주인양 나서는 자체부터 구역질나는 일이다.
윤리도덕에 지고불변의 가치기준은 없다. 외설의 기준도 끊임없이 변해 왔다. 영원한 금서란 없는 법. 「채털리부인의 사랑」을 보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어떤가. 외설이라고 규제를 주장하는건 주관적 판단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책을 태우는 일은 폭력이다. 분서갱유는 진시황과 히틀러 만으로도 충분하다. 계속돼서는 안된다. 어떤 책이든 시대의 사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섹스묘사〓외설」이란 등식은 유치하고 웃기는 인식이다. 쓰레기와 진주는 엄연히 다르다.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자. 규제의 남발은 국민의 지적수준을 우습게 보는 처사다. 청소년 운운 역시 유통과정 관리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정편의 위주의 발상일 뿐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음란성시비는 제발 그만 두자.(하이텔ID·supermew·chea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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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삿속 앞세운 낯뜨거운 성묘사 규제 당연
소재는 18세 여고생과 38세 중년남성의 불륜행각. 배경은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 내용은 낯을 붉힐 정도의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로 시종일관. 그저 숨죽이고 읽어나갈 뿐 뭘 말하려는 의도인지 종잡기조차 힘들다. 이걸 「소설」이라고 펴내고 예술입네 어깨에 힘주면 어쩌자는 말인가. 과연 표현의 자유는 무소불위의 권능인가.
표현의 자유도 좋고 성의식의 개방도 그럴 듯하다. 하지만 너무 무분별하게 남용하지는 말자. 야한 말 한마디 진한 장면 하나 더 넣어보려는 노력이 표현의 자유인가. 괜히 능청떨지 말라. 관심을 끌어 한몫 잡아보자는 장삿속일 뿐이다. 「끝물」을 노리는 판촉전략도 영악하기 짝이 없다. 회수니 폐기처분이니 법석을 떨면 또 한차례 관심의 대상이 되니 말이다.
자유라고 해서 제멋대로 표현하고 행동해도 된다고 알면 큰 착각이다. 규제없는 자유. 말이야 그럴 듯하다. 하지만 폭력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진정한 자유란 책임과 구속이 따를 때 보장된다.
물론 도덕교과서 아닌 예술작품인만큼 성행위 묘사가 필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 그 자체가 돼서는 곤란하다. 장삿속을 앞세운 외설서적의 출판은 규제돼야 마땅하다.(하이텔ID·GH0428.82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