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福禮기자」 떨잠 비녀 가락지 귀고리 노리개 은장도. 조선조 궁중이나 양반가 여인들이 즐겨 사용했던 장신구들이다. 이는 조상의 예술혼과 손때만 묻은 게 아니다. 보석공예가 이선호씨(64)의 손때도 30년 가까이 묻어 있다.
이씨는 이 장신구들을 11일부터 2주간 도쿄 중심가 아사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통해 펼쳐 놓는다. 세계 장신구 시장을 주름잡는 일본,그일본의 공예가들을 대표하는 일본공예학회 초청으로 「이선호장신구전」이 열리는 것이다. 국내전통장신구공예가로서 초청받기도 최초다.
『전통 장신구를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한 보석 60여점을 전시할 예정인데 너무들 좋아하세요. 한국의 전통 장신구들이 굉장히 환상적이라는 얘기도 많이 하고요. 사실 서구적 스타일로 만든 장신구도 몇점 갖고 갔는데 그쪽 관심은 온통 한국 전통 장신구쪽으로만 쏠리더라구요』
이씨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생각이다.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지대한 관심도 다 이 때문으로 믿는다.
이씨의 작품은 조상들의 전래 스타일을 되살리면서 현대인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들. 정교한 세공이 화려하고 우아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을 준다. 조선시대 호사스러운 여성용 머리 장식품이었던 떨잠은 백옥에 공작석 진주 칠보 순금 등 다양한 보석으로 장식해 머리꽂이 뿐만 아니라 브로치로 되살아났다. 왕비 흉배에 수놓아지던 박쥐를 섬세하게 세공한 은가락지, 상평통보 금목걸이, 순은 비녀스타일 브로치….
작품 하나 제작에 최소한 한달에서 두달쯤 걸릴 만큼 손이 많이 가 작품 수는 아주 적은 편. 이씨도 자신의 작품에 애착이 강해 거의 판매는 하지 않는다고.
전통 장신구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그가 보석공예에 발을 들여 놓은 때는 37세로 늦은 나이. 해외사업때문에 남편이 1년간 집을 떠나게 되면서 얻은 「중년의 자유」를 무언가 창조적인 일에 바치기로 한 덕택이다.
공방을 찾아가 보석공예를 시작했다.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들고 가 밤 늦게야 집에 돌아오는 생활이 1년여 계속됐어요』 솜씨가 서툴러 용접 불똥에 눈썹과 머리를 태우고 망치에 손을 찧어 보라색 멍이 떠날 날이 없을 때는 경기여고 동창들이 『쟤가 왜 저러느냐』며 말도 많이 했단다. 홍익대 산업미술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했고 73년 자신의 공방을 차려 작품 활동을 시작해 국내전시회도 4회나 가졌다.
부부금실이 좋기로도 소문난 그는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사회활동을 하려면 남편의 절대적 도움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전시회는 남편과의 공동 작품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