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08)

  • 입력 1996년 11월 8일 20시 47분


제5화 철없는 사랑 〈47〉 이윽고 희광이가 누르 알 딘에게로 다가와 말했다. 『여보시오, 나는 그저 명령을 받고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일개 노예에 지나지 않소. 그러니 알라께 돌아가더라도 날 원망하지는 말아주시오. 그리고 마지막 소원이 있거든 말해주시오』 그러자 누르 알 딘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이런 노래를 읊조렸다. 이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칼과 피의 가죽깔개, 오! 이 속절없는 운명이여! 어찌 된 일인가, 정다운 눈을 한 벗이 없음은? 아무도 없는가, 불러도 대답할 자 없단 말인가? 목숨은 다하여 이제 죽을 때가 왔건만, 신의 자비를 갖다주는 자는 없는가? 이몸을 가긍히 여겨 어두운 실의를 거둬버리고, 오직 한모금 물로써 마지막 갈증을 덜어줄 이는 없는가? 사람들은 누르 알 딘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지었다. 희광이는 일어나 물 한그릇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대신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냅다 물그릇을 쳐 깨뜨려버렸다. 그리고는 어서 목을 치라고 소리쳤다. 그제서야 희광이는 가엾은 젊은이의 눈을 가렸다. 군중들 사이에서는 대신을 욕하는 소리가 번져갔고, 비탄에 찬 울음소리가 퍼져나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 지평선에 자욱이 먼지가 일더니 그것은 점차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궁전에 앉아 있던 왕은 그 광경을 보고 시종에게 말했다. 『저 흙먼지와 함께 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오너라』 그때 알 무인이 왕에게 독촉했다. 『먼저 이놈의 목을 베라는 명령부터 내리시옵소서』 그러나 왕은 불길한 예감에 싸인 표정이 되어 말했다. 『아니, 무슨 일인지 알 때까지 기다리라』 그런데 그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교주의 대신 쟈아파르와 그의 일행이었다. 이윽고 쟈아파르와 그의 군사들은 바소라시에 이르렀다. 시내로 들어가보니 그런데, 길거리에는 온통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쟈아파르는 왜 소란스러운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오늘 궁전에서 누르 알 딘의 처형이 시행되기 때문에 이런 소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쟈아파르는 염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말을 몰아 왕에게로 달려갔다. 왕에게로 달려간 쟈아파르는 왕에게 인사하고 나서 자신이 멀리 바소라까지 달려온 까닭이며, 만약 그 젊은이에게 무슨 언짢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는 날이면 가해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사형에 처하겠다는 교주의 결의를 전했다. 그리고 쟈아파르는 교주의 이름으로 군사들에게 명령했다. 교주가 그의 친서에서 명령한 바를 무시한 모하메드 빈 스라이만 왕과 그의 대신 알 무인 빈 사뷔를 감금하는 한편 알 화즈르 하칸의 아들 누르 알 딘을 석방하여 바소라의 새 왕으로 봉하라고. <글: 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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