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믿을 수 없는 시험출제

  • 입력 1996년 11월 8일 20시 48분


모든 시험의 가장 기본적 원칙은 공정한 경쟁이다. 입학시험 입사시험 자격시험 공무원임용시험 등 어느 것도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시험의 존재이유가 없어진다. 때문에 출제와 비밀유지 시험감독 채점에 이르기까지 시험의 전과정이 공정해 문제가 없어야 한다. 하물며 국가기관의 초급간부를 뽑는 시험은 그 중요성에 비추어 더욱 철저한 관리가 요망된다. 최근 실시된 법원행정고시 행정학 객관식 시험문제의 상당수가 출제교수가 펴낸 문제집의 문제와 비슷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 고교3년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 영어성적을 내기 위한 영어듣기평가문제 일부가 입시학원의 학습지에 사전유출된데 이어 다시 한번 시험출제관리의 허점을 드러냈다. 법원행정고시 행정학 문제는 40개 문항 중 10여개가 출제교수의 문제집에서 나왔다고 하니 공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 것이다. 출제방식을 보면 한심할 정도로 허술했다. 겨우 2명의 교수에게 개별적으로 30문제씩 출제를 의뢰, 이중 40개를 골라 시험문제로 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는 공정한 출제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더 많은 출제위원을 선정, 비밀장소에서 숙식을 함께 하며 독창적인 문제를 공동고안하는 것이 바른 출제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시중에 나와 있는 문제집들도 모두 검토, 같은 문제는 피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출제위원들의 양식이다. 과거에도 더러 그래왔듯이 자기 제자 또는 자기의 책이나 문제집을 공부한 수험생이 유리하게 출제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특히 자격증 시대인 지금은 각종 자격시험의 철저한 출제관리도 필수적이다. 이번 법원행정고시출제 물의는 국가기관의 공신력이 걸린 만큼 재시험 등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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