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가 물가를 부추기다니

  • 입력 1996년 11월 8일 20시 49분


물가안정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던 정부가 앞장서 물가를 부추기고 있다. 유류값 가스 전기료와 고속도로 통행료를 올해 안에 올리고 내년 상반기에는 지하철 상수도료까지 인상하겠다는 방침이 그것이다. 농산물값 폭락으로 올해 물가가 4.5%선에서 안정될 것으로 전망되자 물가당국이 그 틈을 비집고 국민생활과 직결된 각종 요금을 대폭 올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놀랍고 한심한 일이다. 대규모의 경상수지 적자가 예상되고 성장률도 6%대로 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물가마저 불안해진다면 우리경제의 앞날이 더욱 걱정된다. 국제수지 적자확대와 성장률 둔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물가만이라도 확실히 잡아야 한다. 정부가 그동안 물가안정을 역설해 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또한 정부는 공공요금의 연내 인상을 허용치 않을 방침임을 여러차례 밝혔었다. 그런 정부가 지수상의 물가관리에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당장 다른 물가에의 파급효과가 큰 에너지값과 고속도로 통행료를 연내에 11.9∼20%나 올리고 뒤따라 다른 공공요금까지 인상할 방침을 굳힌 것이다. 물론 정부가 확정,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은 각종 공공요금의 대폭 인상을 전제로 짜여 있다. 따라서 공공요금은 인상시기가 문제이지 언젠가는 오르리라는 것이 예고되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공공요금 연내 인상불허 방침을 하루아침에 뒤엎는 것은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것이다. 공공요금은 다른 물가를 부추기고 기업활동과 국민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인상폭은 물론 시기의 선택에도 신중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 불안요인은 많다. 그런 가운데 물가에의 영향이 큰 에너지값 인상과 관련, 소비절약과 무역수지 균형을 위해 고(高)에너지 가격정책으로 선회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은 정책의 실효성과 합목적성을 외면한 것으로 현시점에서는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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