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예비군 정신교육비디오 내용 한심

  • 입력 1996년 11월 9일 20시 50분


북한 잠수함 무장간첩 침투사건 이후 예비군 훈련의 강도(强度)가 높아졌다는 소식이다. 각개전투 사격 행군 등 훈련을 현역군인 못지않게 시켜 예비역에 갓 편입된 사람들은 『제대 말년이 훨씬 편했다』며 푸념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대개 오전부터 구보 포복 등 힘든 훈련을 하고나면 『그만 하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데 부대측은 이럴즈음 정신교육용 비디오를 틀어주어 박수를 받기도 한다 ▼이런 교육용 비디오에 한총련 사태로 연행됐던 대학생들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를 「좌익 비호세력」으로 암시한 내용이 들어있다고 해서 말썽이다. 대법원측은 「한총련의 실상」이란 제목의 이 테이프를 긴급입수해 본다음 『사법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며 국방부 안기부 등에 상영금지조치를 요구했다. 판사의 영장기각은 증거가 불충분했기 때문인데도 마치 좌익을 옹호한 양 매도했다는 이유에서다 ▼문제의 테이프는 안기부 산하 모연구소가 제작한 것이다. 국가기관이 사법부의 결정에 대해 매도하는 내용의 테이프를 만들어 예비군들에게 보여주었다면 그건 분명히 잘못이다. 안기부측은 이에 대해 『판사의 영장기각을 놓고 일부에서 좌익에 동조하는 행위라고 보는 시각도 있음을 객관적으로 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사법부의 입장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출처가 불분명한 「시각」만을 편집해 일방적으로 교육하는 게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50년대 미국에서 매카시선풍이 휩쓴 뒤 미국민들은 맹목적 반공주의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 않았다. 근거없는 고발이나 매도는 오히려 역작용만 일으킬 뿐이다. 사법부의 결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검찰이 그 이유를 대고 정정당당하게 대처했어야 옳았다. 이제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신교육 비디오를 틀어줄 때 박수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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