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16〉
내가 일어나서 옷을 입기 사작하자 현석이 묻는다.
『왜그래?』
『집에 가야잖아』
나는 「청소년 여러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각입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어쩌구 하는 라디오 방송을 금방 녹음하고 나온 아나운서처럼 권위적인 표정으로 현석을 쳐다본다. 그러자 현석은 만화가게에서 밤을 새우기로 작정한 가출소년처럼 시트를 얼굴 위로 뒤집어쓰고 누워버린다.
그동안 현석이 내 아파트에 드나들긴 했어도 자고 간 적은 별로 없다. 한때 우리는 텔레비전의 아홉시 뉴스가 시작될 때 같이 침대에 들어가곤 했다. 그래야 자정 넘어 각자의 침대에서 잠자리에 들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것은 현석의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의 어머니가 기다린다는 것에 한 번이라도 불만을 품은 적은 없다.
『일어나서 가』
탁자 위의 담배로 손을 뻗으며 내가 다시 말한다.
『가라니까』
『……』
『아침에 헤어지기 싫어서 그래』
『……』
『아침에 헤어지려면 더 쓸쓸해』
한참동안 가만히 있더니 이윽고 시트를 밀치며 일어난 현석이 내 등뒤에 와서 선다. 내 어깨 위에 팔을 얹는다.
『그러니까 결혼하자는 거야』
『결혼하면 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적어도 이런 식으로 헤어지진 않아도 되잖아. 다음 만날 약속을 하지 않아도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는 관계이고』
『……』
『지금보다는 훨씬 덜 불안하고 그리고, 덜 쓸쓸할 거야』
한 시간쯤 뒤에 우리는 현석의 집이 있는 정릉의 언덕빼기를 올라가고 있었다. 현석은 택시를 타면 된다고 우겼지만 바람을 좀 쐬고 싶다는 내 말을 믿는 척하며 내 차에 올라탔다.
그의 집이 보이는 편의점 앞에 차를 세운다. 현석은, 운전 조심해, 하고는 차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손잡이에 손을 댄 채 다시 등을 돌려 말한다. 전화할게. 그런 다음 차에서 내리더니 집 쪽을 향해 길을 건너가 버린다.
가 버린다. 왜 「간다」고 생각하지 않고 「가 버린다」고 생각하는지 모를 일이다. 가지 않겠다는 사람을 떼민 것은 나 자신이면서.
<글 : 은 희 경>